<전자거래 관련법률 정비 이대로 좋은가>(6/끝)법령 정비시스템 이대론 안된다

 지난 97년 전자거래기본법 입안 당시 3대 기본법 가운데 하나로 제정의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됐던 전자자금이체법은 지난 4년여간 주무부처인 재정경제부의 반대로 공식적인 논의조차 이뤄진 적이 없었다. 전자상거래(EC)가 아직 초기 시장인데다 기술진보가 빨라 섣불리 법제화할 수 없다는 명분이었다. 대신 재경부가 내세웠던 것은 비록 한계는 있지만 다소 자율적인 ‘약관’을 이용한다는 것. 그러다 지난 9월 정보통신부가 가칭 ‘전자지급결제서비스에 관한 법률안’과 곽치영 의원이 ‘전자상거래 자금이체 관련 법률안’을 마련해 전격 입법 작업에 들어가자 재경부는 갑자기 돌변했다. 정통부와 곽 의원측의 법안을 모두 포괄하는 가칭 ‘전자금융거래에 관한 기본법’을 연내 마련해 내년 2월 정기국회에 상정키로 한 것이다. 또한 이맘때쯤 재경부의 갑작스런 태도변화를 부채질한 사건도 있었다. 기존 법으로는 존립근거를 찾을 수 없었던 전자지불대행(PG)업체들이 경기 광명경찰서의 특별수사 대상에 올라 안팎으로부터 비난의 대상으로 몰리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급박하게 돌아가는 최근의 상황이 재경부로 하여금 뒤늦게 법제화 작업에 나서게 한 결정적 요인이 됐다.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또 하나의 걸림돌이 갑자기 불거졌다. 최근 민주당 조재현 의원이 가칭 ‘전자어음법’을 마련해 입법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가까스로 당과 재경부·정통부·금감위 등 유관부처들이 모두 전자금융기본법에 담기로 합의한 가운데, 불쑥 나온 조 의원측의 돌출행동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사례는 국내 실정에 독특한 행정부처의 ‘과잉의욕’과 국회의원들의 ‘실적주의’가 빚어낸 결과”이며 “세상은 급변하고 있지만 여전히 행정부처와 의회의 변하지 않는 습성에서 비롯됐다”고 한결같이 비판하고 있다.

 ◇문제점=상당수 전문가들은 법률 입안과정에서의 이같은 폐해를 어쩔 수 없는 현실로 인정하면서도 최소한의 개선노력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경원대 손진화 교수는 “헌법이 보장한 의회의 입법기능을 어떻게 막을 수 있고, 또한 현행 법률 소관부처 관행이 존재하는 한 중앙부처의 의욕을 꺾을 수 있겠느냐”면서 “다만 부처의 이해관계와 의원의 실적주의 경향에 떠밀려 관련 법률이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거나 해당 법률이 입법과정에서 왜곡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균관대 최준선 교수도 “부처별로 관할법이 있으면 확실한 책임성이 생긴다는 이점도 있다”고 전제하고 “전자상거래 등 유관부처가 다수 존재할 경우는 부처간 의견충돌로 인한 문제가 심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전자상거래(EC) 등 전문분야에서는 깊이있는 식견보다 의욕이 앞설 경우 해당 산업이나 국민생활에 적지 않은 폐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신중한 입법 관행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저작권심의위원회 관계자는 “제대로만 된다면 문제될 게 없지만 현재로선 행정부처나 의원들의 전문성이 크게 취약하다”면서 “세계적인 흐름과 정책동향, 기술흐름을 면밀히 파악하는 것부터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의원입법 가운데 20∼30%만이 국회를 통과하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대안은 없나=지난 수십년간 지속돼 온 국내 입법·행정체계에서는 근본적인 개선이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다만 부처발의를 중재할 수 있는 강력한 중간 조정기구는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손진화 교수는 “미국의 경우 민관 전문가협의기구인 통일주법위원회(NCCUSL)가 다수의 이해가 상충하는 법률을 적극 조정하고 있다”면서 “현실적으로 국내에서는 법제처가 이같은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조정기구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대 김문환 교수도 “국회의원들의 정책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한시적인 틀에서 벗어나 민간 전문가풀을 상시 가동,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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