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거래 관련법령 정비 이대로 좋은가>(3)거래에만 전자문서가 필요한가

 1년 이상 끌어온 전자거래기본법 개정안이 마련된 것은 국내 전자상거래 사상 가히 기념비적인 일로 평가된다. 개정안이 그동안 문제점으로 지적돼온 전자문서의 송수신 시기에 대해 명쾌하게 정의, 논란의 소지를 최소화함으로써 전자상거래가 명실공히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전자거래기본법은 ‘전자거래의 법률관계를 명확히하고 전자거래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며 전자거래의 촉진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총칙에 명시돼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법은 전자문서의 송수신 시기에 대해 많은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법해석에 논란의 여지가 많다 보니 이 법을 믿고 전자상거래를 하기가 힘든 것은 당연했다.

 ◇어떻게 바뀌었나=기존의 전자거래기본법은 지난 99년 2월 미국, 일본, 호주 등 선진국보다 앞서 제정됐다. 그러나 ‘세계 최초’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단 이 기본법은 엉성했다. UNCITRAL이 작성한 전자거래모델법을 번역하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세계에서 가장 빨리 만들려다 보니 번역 자체도 충실하지 못했고 기존 법체계나 기존 법의 관련조항들을 세심하게 검토하지도 못했다.

 기본법에는 ‘작성자외의 자 또는 작성자의 대리인외의 자가 관리하는 컴퓨터 등에 입력된 때는 송신된 것으로 본다’고 돼있다. 수신자 입장에서 보면 정말 어처구니 없는 법조문이다. 세상에 수많은 컴퓨터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작성자나 작성자 대리인이 자신들의 것이 아닌 컴퓨터에만 전자문서를 입력하면 송신의 의무를 마쳤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조항이 존치하는 한 모종의 다른 의도를 가진 상거래 당사자간에는 전자문서의 송신과 관련한 송사가 끊이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또한 자동화된 전자상거래의 특성상 비록 전자문서가 수신자에게 수신됐다 하더라도 이를 작성자가 송신한 것으로 간주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대한 해석도 논란이 많았다. 기본법에는 ‘작성자가 명확하게 의사를 밝혔다는 증거가 없더라도 작성자의 이름으로 전자문서에 의한 의사표시를 한 경우’ ‘대리권 없이 대리인 이름으로 전자문서가 수신된 경우’ 과연 작성자가 송신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분명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

 기본법은 또 전자문서의 정의에서도 문제가 드러났다. 기본법은 전자문서를 ‘컴퓨터 등 정보처리능력을 가진 장치에 의하여 전자적 형태로 작성되어 송수신 또는 저장되는 정보’로 규정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전자적 형태로 작성됐지만 송수신되거나 저장되지 않은 정보는 전자문서로 인정받지 못한다. 전자문서의 ‘법적 효력’ 문제를 떠나 일단 작성된 문서가 문서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전자적 형태가 아닌 기존 종이문서와 비교할 때 납득이 안가는 대목이다. 이 규정대로라면 종이문서도 발송 또는 도달되지 않거나 보관함에 보관되지 않는 이상 문서로 인정받지 못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래에만 문서가 필요한가=이번에 마련된 개정안은 전자상거래의 필수도구인 전자문서와 전자문서의 송수신 시기를 매우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규정해 기본법의 허술함을 극복했다.

 개정안에는 문제의 송신시기 조항이 ‘수신자 또는 그 대리인이 당해 전자문서를 수신할 수 있는 정보처리시스템에 입력된 때’로 바뀌어 송신자의 송신 의무가 대폭 강화됐다. 또 예외조항에 해당되지 않은 경우 수신된 전자문서가 ‘작성자의 이름으로 작성됐거나’ ‘대리인이 의사표시를 한 경우’에는 일단 작성자가 의사표시를 한 것으로 인정했다.

 작성되기는 했지만 송수신 또는 저장되지 않은 전자문서가 과연 전자문서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란도 이번 개정안에서 불식됐다. 개정안은 ‘전자적 형태로 작성, 송수신 또는 저장된 정보’로 정의, 작성만 된 전자문서도 전자문서로 인정했다.

 개정안은 이처럼 전자상거래 행위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소지를 최소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숙제를 안고 있다는 지적을 여전히 받는다. ‘전자문서의 적용범위’ 때문이다.

 기존 기본법에서 ‘이 법은 전자문서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모든 거래에 적용한다’고 돼있었다. 전문가들은 이 규정대로라면 상거래행위에 수반되는 전자문서가 아닌 각종 전자문서는 법적인 효력을 지닐 수 없게 된다며 전자시대에 걸맞게 전자문서의 효력을 확대시켜야 한다고 비판해왔다. 이에따라 개정안은 ‘이 법은 모든 전자거래에 적용한다’고 바꾸었다. 개정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거래란 굳이 상거래만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이같은 조문변경으로도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은 기본법이나 개정안이나 모두 ‘전자거래란 재화나 용역의 거래에 있어서 그 전부 또는 일부가 전자문서에 의하여 처리되는 거래’라고 정의내리고 있어 여전히 재화와 용역을 주고받는 상거래에 국한된다고 반박하고 있다.

 전자거래기본법은 물론 개정안도 여전히 전자문서가 광범위하게 작성되는 현실과 달리 전자문서의 법적 효력을 해석에 따라 상거래에 한정하고 있다는 지적에 직면해 있는 셈이다.

 문제의 시발은 거래라는 용어다. 거래란 용어가 UNCITRAL의 전자거래모델법에는 ‘인터내셔널 커머셜(international commercial)’로, 미국의 통일전자거래법(UETA)과 호주의 전자거래법에는 ‘트랜잭션(transaction)’으로 돼있다. UNCITRAL의 전자거래모델법에는 ‘커머셜(commercial)’이 위임, 임치, 현상광고, 리스계약 등 다양한 전형계약뿐 아니라 기타 비전형계약도 포함하는 포괄적 의미로 돼있다. 또 우리보다 한발 늦게 제정된 미국의 UETA에는 ‘트랜잭션’이 상거래뿐 아니라 2인 이상의 사람간에 발생하는 일체의 행위, 호주의 전자거래법에는 비상업적인 것을 포함한다고 명확히 정의돼있다.

 사정이 이 같은데도 개정안에서도 여전히 ‘거래’에 대한 명확한 정의없이 모든 전자거래에 적용한다고 규정한 것은 해석이 분분해질 수 있는 불씨를 제공하는 꼴이 됐다.

 개정안에서 거래의 정의를 외국의 다른 법들처럼 상거래가 아닌 범위로까지 명확하게 확대하지 못한 것은 또다른 속사정이 있다. 부처마다 자신의 소관업무에 한정해 법을 만들어야 하는 현실구조 때문이다. 산자부가 소관하는 전자거래기본법은 이번 개정과정에서 법무, 정통부 소관 영역이었던 전자서명과 관련된 조항들이 모두 삭제됐다. 기본법이 자신들의 소관영역을 침범했다는 비난이 거셌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거래의 정의를 확대하다가는 기본법 자체가 와해되는 우를 범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부처간 영역다툼이 법의 완결성을 해치는 또하나의 전형적인 사례가 된 셈이다.

 <유성호기자 shyu@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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