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경영>경영프리즘(30)인적자원(HR) 혁신

 제일제당 인사팀 이상렬 과장의 하루는 행정업무에만 매달리던 이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그는 출근하자마자 사내 각 사업본부에서 이뤄지는 새로운 프로젝트와 관련한 워크숍이나 회의에 직접 참여한다. 이것이 끝나자마자 공장, 사업장, 영업조직 등을 직접 방문해 직원들간의 최근 이슈 및 인적자원(HR:Human Resource)에 관한 건의사항을 점검한다. 오후에는 자사의 인사시스템을 외부에 홍보하는 데 시간을 할애한다. 이처럼 인사담당자의 업무형태가 바뀐 것은 HR 혁신이 가져다 준 결과다.

 최근들어 기업 인사 담당자들의 역할이 크게 바뀌고 있다. 지원부서라는 개념에서 이젠 전략을 수립하고 수행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전략 부서로의 성격이 짙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전까지는 직원이 인사팀의 최대고객이었지만 이제는 CEO와 부서장을 주요 고객으로 삼게 됐다.

 HR는 90년대 이후 기업의 새로운 전략적 자산으로 인식되면서 직급·보상·평가·교육 등 인적자원의 필수요소들이 혁신돼왔다. 최근 디지털경제 시대가 도래하며 HR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이는 디지털기술이 사회환경을 비롯해 기업의 경영환경, 전략 및 조직 운영방식을 크게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디지털경제가 고객을 비롯한 기업 내외부의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과의 관계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점도 한몫한다.

 최근 한 협회에서 열린 HR 관련 세미나 참석자의 면면을 봐도 HR의 확산을 손쉽게 알 수 있다. 기업 담당자가 전부였던 과거와는 달리 군 관계자를 비롯해 인사쪽과는 멀리 여겼던 사람들의 참여가 늘고 있다.

 또 최근 LG가 그룹계열사 인사담당자를 교육하기 위해 열었던 인재개발종합대회도 주목할 만하다. 95년부터 해마다 개최하는 행사지만 올해 다른 점은 삼성과 현대 주요 그룹 인사담당 임원과 실무자가 함께 인사관리 노하우를 서로 공유하기 위해 함께 모였다는 사실이다. 이 자리에는 롯데 한국통신 임원뿐만 아니라 외국계 기업까지도 참여해 열기가 뜨거웠다. 이는 모두 새로운 인사관리체계 개발이 시급하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방증이다.

 LG경제연구소 김현기 연구원은 디지털경제 시대 새로운 경쟁력으로 HR를 꼽았다. 과거 권위적으로 집행되던 인사업무가 현장 관리자의 의견과 권한이 존중되는 유연성을 갖춘 형태로 전환돼야 하며, 기업 내부 중심으로 진행되던 인사관행들이 외부의 우수한 인적자원을 활용하는 방안으로 바뀌어야 된다고 강조한다. 특히 연공서열과 집단주의를 중시하던 사람중시의 인사관행이 개인의 다양성과 공헌도, 조직의 전략적 특성과 직무의 가치를 고려하는 ‘일 중심’ ‘성과중심’의 인사원칙과 접목되는 것은 필수다.

 IT기술이 발달하며 HR에 혁신적인 것 중 하나는 저부가가치 행정업무가 eHR시스템 도입으로 효율화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다. 그동안 서류업무로 진행됐던 인사업무를 IT시스템으로 대체함에 따라 이제는 고유기능만은 조직이 갖고 있으며 인사담당자는 질적 성장을 높여 전문컨설턴트로 변화관리를 주도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세계의 선진기업들은 eHR를 포함한 HR혁신을 통해 디지털경제를 이끌려는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히는 것이 휴렛패커드사의 인사혁신이다. HR역할 측정 서베이를 통해 만들어진 멀티플HR역할 모델을 기초로 인사혁신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서베이를 통해 4개의 HR의 중요한 역할이 무엇인지, 역할 규정후 현장관리자와 HR부문을 중심으로 역할을 분담하고 활동에 책임지게 했다. 이런 결과로 HR부문의 높은 서비스 질을 유지하면서도 HR 담당자 한명당 관리해야 할 종업원 수를 1 대 53에서 1 대 80으로 높임으로써 조직에 상당한 이득을 가져다줬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오라클처럼 HR관리시스템을 도입하는 곳도 늘고 있다. 오라클인 자사 전사적자원관리(ERP) 중 인사관리 모듈을 미국 본사와 각 지사에 구축한 결과 HR관련 업무효율성을 높여 매년 직원 1000명당 160만달러 이상의 비용절감효과를 봤다.

 국내에도 이런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삼성을 비롯한 국내 대기업은 이미 HR전문컨설턴트를 따로 두고 인적자산관리를 선진화시키고 있다.

 최근 LG전자가 사원 1억원 연봉시대를 알리는 파격적인 성과주의형 인사제도를 도입한 것도 좋은 예다. 이 인사제도는 직급 체계를 대폭 축소하고, 직급별 연봉 폭을 20%에서 100%까지 확대해 조직에 공헌하고 시장가치가 높은 사람에 대해 보상을 강화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효성도 98년 조직 개편 이후 HR부문에도 전반적인 개혁에 들어가 역량에 근거한 승진, 평가, 보상 등 모든 부분에 적용해 가고 있으며 교육훈련도 CBC(Competency Based Curriculum)를 기반으로 경영성과에 직결하는 인재육성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혁신 바람은 중견기업들까지 퍼지고 있다. 예를 들어 직위상의 호칭을 완전히 폐지하거나 서구식 직무급이나 연봉제 도입 추진도 이러한 예 중 하나다.

 디지털경영은 효율적인 HR에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기업은 전략과 HR의 연계에 충실해야 하며, 변화관리의 촉진제로 다양한 HR 혁신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기업은 HR 담당자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통해 담당자들의 질적전환과 적극적인 양성에 관심을 가져야 디지털경제의 승리자로 남을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병희기자 shak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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