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반도체업체들이 정말 반덤핑 제소에 나설 수 있을까.”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는 24일 예상밖의 소식에 어리둥절해하면서도 가능성에 대해선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국내 업계는 떨어질 대로 떨어진 반도체가격을 올리거나 최소한 일본 시장만큼은 지켜보겠다는 의도의 ‘언론플레이’라고 분석했다. 그렇지만 만에 하나 제소가 이뤄질 수 있으며 이 경우에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왜 제소하려 하나=국내 반도체업체들이 적자상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일본업체들의 경영난은 더욱 심하다.
이번에 제소방침을 정한 NEC 등 4개사는 이미 올초부터 한계상황에 직면했다. 이에 일본업체들은 지난 여름부터 감산, 사업철수,비메모리 사업집중 등으로 상황을 반전시키려 했으나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D램가격은 오히려 더욱 떨어졌다.
한국업체에 대한 경쟁력도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이다. 일본업체들은 90년대말 불황기에 투자가 미흡했던 데다 구조조정을 실시하지 않아 삼성전자는 물론 하이닉스에 비해서도 원가경쟁력이 낮은 상태다.
비메모리사업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려는 전략도 확실한 무기가 없는 데다 전세계적인 정보기술(IT)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이 감산에 동조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일본의 4개사는 자사 시스템사업부마저 가격대비 성능이 우수한 한국산 제품을 구매해 쓰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업체들의 반덤핑 제소 방침은 사실상 반도체사업에서 손을 떼야 하는 상황까지 내몰린 데 대한 물리적인 저항으로 풀이됐다.
◇한국업체를 제소할 수 있을까=현재로선 가능성이 낮다. 불황으로 인해 모든 회사의 제품가격이 하락한 상황에서 덤핑판매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힘들다. 더욱이 정부의 조사와 판정이 내려지기까지 최소한 6개월 이상 걸리는 상황에서 한국산 제품의 유입을 저지하는 효과도 의문시된다.
일본업체에 앞서 통상압력을 추진했던 미국 마이크론과 독일의 인피니온이 수개월째 검토만 할 뿐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무엇보다 이번 4개 일본업체는 반도체외의 시스템사업부에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반도체를 상당량 구매해 쓰고 있다. 반도체에 대해 덤핑 제소할 경우 자체 시스템사업에 곤란을 겪을 수 있다.
제소한다 해도 일본정부가 받아들일지도 미지수다. 일본정부는 최근 세계무역기구(WTO)의 뉴라운드협상에서 미국 주도의 반덤핑 조치와 관련해 한국정부와 공동보조를 맞춰왔다.
일본정부가 협상타결이 임박한 상황에서 경제적 실익도 없으며 그동안의 입장을 뒤집는 반덤핑 제소를 수용하겠느냐고 국내 업계 관계자들은 반문했다.
흥미로운 것은 반도체분야에선 반덤핑 제소와 같은 통상분쟁이 일어나면 일부 시스템 제조업체들이 반도체 확보에 나서며 덩달아 가격이 상승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일본업체들은 자국내 시장점유율이 상승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마이크론이 90년대 곧잘 써온 단골메뉴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업체들이 제소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과 하이닉스 관계자들은 “제소한다 해도 일본업체들은 전혀 승산도 없고 실익도 없는 싸움을 벌여야 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다만 일본업체들이 제소에 나설 경우 미국과 독일업체들이 동조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우리 정부와 업체들은 여러 적과 싸워야 하는 부담이 생길 수 있다. 사실 이 점이 우리로선 껄끄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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