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컨설팅업계 고사위기 논란 배경

 “A사측에서 처음에는 18억원을 요구하며 세부적인 액션플랜까지 세워주겠다고 했지만 매년 컨설팅을 받아본 경험으로 봐 그럴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전체적인 틀만 잡아주는 컨설팅으로 축소했다.”

 한국무역협회 문석호 기조실장이 ‘무역협회 중장기 발전방안’에 대한 컨설팅 과정을 설명한 말이다. 김재철 무협 회장이 공식석상에서 밝힌 말처럼 ‘아이디얼한 수준’의 보고서는 당초 컨설팅 범주 안에 세부 실행계획이 포함돼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보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1600페이지의 방대한 양의 보고서를 받은 무협 관계자들의 반응이 영 신통치가 않다. 그 이유는 뭘까.

 ◇정부기관이 외국 컨설팅을 선호하는 진짜 이유=흔히 외국계 컨설팅업체를 선호하는 이유로 그들이 보유한 경험과 방대한 DB가 꼽힌다. 그러나 이면에는 이들의 ‘진짜 노하우’에 대한 메리트보다 ‘브랜드 가치’를 선호하는 비과학적 사고가 존재하고 있다.

 브랜드 가치가 노하우에서 쌓였다는 면에서 보면 분리해 사고해선 안되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아무래도 외국계 컨설팅업체로부터 받는 것이 감사나 그 이후 후속작업에도 속편하다”는 한 정부 관계자의 말이 단적으로 증명한다. 혹 ‘실패’해도 ‘어디 어디가 한 것인데’라는 면피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이러니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국내 기업이 역차별당한다=정부의 컨설팅 발주관행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어떤 종류이든 국내 컨설팅업체가 공공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는 철저한 ‘인건비’ 계산이 따른다. SI프로젝트에서 문제로 지적되는 인건비 산출기준(과기부의 소프트웨어 개발 단가기준)이 그대로 적용된다. 이에 비해 외국계 컨설팅의 경우 ‘협상’에 의해 결정된다. 이와 관련, 정부기관 관계자는 “감사원 감사를 고려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반면 “외국 컨설팅업체에 이 기준을 들이댄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기획예산처가 중심이 돼 추진하고 있는 ‘G2B활성화사업’을 위한 프로젝트에서도 드러난다. 삼성SDS가 프로젝트를 책임지며 삼일회계법인·아더앤더슨·딜로이트 등이 참여하는 이번 프로젝트의 컨설팅 예산은 12억5000만원. 전략컨설팅, 싱글윈도구축ISP, BPR 등 역할배분에 따른 참여기업의 비용배분과 투입인력은 각각 40% 11명, 22% 5명, 33% 10명, 5% 2명 등으로 계약서상에 명시돼있다. 그러나 삼성SDS 관계자는 “프로젝트 수행후 영업대표측으로 우리가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외국 컨설팅업체에 비용을 좀 더 배분하는 게 관행이라 배분율은 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이와 관련, 국내 컨설팅업체 관계자는 “간혹 정부에서 어떤 보고서를 구할 수 있냐는 주문을 받는데 과연 이런 요구를 외국계 컨설팅업체에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다. 이같은 현실은 외국계 컨설팅업체 무형의 자산과 대가를 인정하는 반면 국내 업체들의 자산은 무료서비스 관점이 적용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국내 컨설팅산업을 육성하자=90년대 중반까지 국내 컨설팅시장에는 ‘IT컨설팅은 돈이 돼도 전략컨설팅은 먹혀들지 않는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략컨설팅을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변했다. 이제는 민간기업뿐 아니라 정부·공공기관조차 전략컨설팅의 오랜 노하우를 가진 외국계 컨설팅업체에 손을 내민다. 디지털경제체제라는 새로운 경제질서로 이전 과정에서 부분이 아닌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과 근본적인 체질개선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전략컨설팅 시장에서 국내 업체는 찾아볼 수 없다. 90년대 초부터 공기업경영혁신 컨설팅에 참여한 경험이 많은 모 대학 교수는 “정부기관의 국산 소프트웨어 사용은 암묵적으로 동의되고 있음에도 왜 유독 컨설팅만큼은 이런 사고가 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외국계 컨설팅 근무경험을 바탕으로 세분화되는 틈새시장으로 나서는 우수인력이 많은 만큼 이들이 대형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하자”고 말한다. 다양한 프로젝트 수행경험으로 레퍼런트 사이트를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관련업계에서는 △SI 단가기준에 근거한 용역비 산출로 인한 역차별 철폐 △국산 소프트웨어 산업육성에 컨설팅 범주 포함 △공공 및 정부기관 컨설팅에서 국내 컨설팅업체에 우선권 부여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세번째의 경우 특혜논란이 벌어질 수 있지만 ‘컨설팅의 정확한 목적’만 세워진다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견해다.

 여기에 컨설팅을 받는 정부기관의 태도나 질적 향상도 중요한 문제로 지적받고 있다. 민간기업에서는 오래전부터 ‘발주기관의 컨설팅 수행자격’이 공론화돼 질적 향상을 이루고 있는 반면 정부기관은 여전히 안일한 태도로 컨설팅을 받고 있다는 비판이다.

 <신혜선기자 shinhs@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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