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가전 `세계 시장점유율 1위` 배경

과거 20년 동안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목이던 VCR·전자레인지·에어컨 등 3개 품목이 최근 1, 2년 새 마침내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며 월드베스트 상품으로 등극했다. 뿐만 아니다. VCR와 전자레인지의 경우 삼성전자·LG전자·대우전자 등 국내 가전 3사의 물량을 모두 합쳐 세계 시장점유율이 각각 50%를 상회함으로써 세계 최대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나라는 현재 반도체를 비롯해 TFT LCD·CDMA 단말기·CD롬드라이브·컬러모니터 등 디지털 분야에서 단기간에 적지 않은 수의 월드베스트 상품을 배출해왔다. 첨단 디지털 제품에 주력하는 것만이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보고 이 분야에 집중 투자해온 결과다.

 이에 반해 짧게는 10년에서 길게는 20년 가까이 주요 수출품목으로 캐시 역할을 해온 아날로그 가전 분야에선 2년 전까지만 해도 단 한 개의 월드베스트 상품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아날로그 가전은 사양품목으로 분리돼 더이상 투자 가치가 없다는 판단 아래 디지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투자를 줄인 데다 무엇보다 가전 왕국인 일본의 벽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일본의 벽을 넘어 전자레인지와 에어컨을 월드베스트 상품에 등극시킴으로써 백색가전에 대한 관심을 다시 한번 환기시켰다.

 가전 3사에서 백색가전부문을 맡고 있는 담당자들은 “백색가전이야말로 최소한의 투자와 관심만으로도 얼마든지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를 달성할 수 있는 분야”라며 “백색가전은 결코 사양품목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LG전자는 지난해 휘센 브랜드를 앞세워 세계 1위 업체인 마쓰시타를 제치고 가정용 룸에어컨 시장에서 410만대를 판매해 사상 처음으로 시장점유율 1위를 달성했다. 이는 지난 98년 IMF 당시 대다수 가전업체들이 투자를 줄이는 상황에서 LG전자만은 세계 시장을 겨냥해 에어컨부문에 집중적인 투자와 함께 시장 개척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로 분석된다. 현재 에어컨사업은 미래 핵심사업인 디지털TV·IMT2000 단말기와 함께 LG전자의 3대 유망수출품목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난해 850만대를 판매해 일본의 샤프를 제치고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한 전자레인지도 마찬가지다. 전자레인지를 사양품목으로 보고 일본의 대다수 업체들이 투자를 게을리하는 틈을 이용해 삼성전자는 차량용과 편의점용 등 틈새시장을 겨냥한 고부가가치 모델을 속속 상품화하고 미주와 유럽 중심의 수출에서 벗어나 수출 시장을 다변화하는 전략을 펼쳐 마침내 톱메이커로 우뚝 섰다. 삼성전자는 전자레인지에 이어 아날로그 가전에서 올해 또 하나의 월드베스트 상품을 배출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예상하는 올해 VCR 수출 물량은 1000만대로 세계 시장점유율 21%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는 그간 부동의 세계 1위 업체이던 일본 후나이보다 50만∼100만대 정도 많은 물량으로 연말쯤이면 삼성전자가 4000만대 규모로 추정되는 세계 VCR 시장에서 1위가 유력시된다.

 삼성전자는 세계 VCR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한 여세를 몰아 앞으로 1, 2년 내 세계 DVD플레이어 시장도 석권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처럼 VCR·전자레인지·에어컨 등 주요 수출품목이 가전 왕국 일본을 제치고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함에 따라 우리나라 가전산업의 위상도 크게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소니나 마쓰시타 등 일본 업체들이 현재 세계 1, 2위를 다투는 세계적인 가전 메이커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것도 과정을 살펴보면 VCR·전자레인지·에어컨 등 주요 아날로그 가전 시장을 석권하면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온 결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디지털 가전 시대를 맞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가장 고민하는 것이 바로 일본에 비해 열악한 브랜드 인지도인 것을 감안해볼 때 VCR·전자레인지·에어컨 시장에서의 세계 1위라는 타이틀은 양사가 세계 디지털 시장을 공략하는 데 있어서도 큰 보탬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아날로그 가전의 이 같은 선전은 가전 3사가 최근 경쟁적으로 출시한 디지털에어컨·디지털냉장고·디지털세탁기 등 디지털 백색가전제품이 해외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 디지털 가전 시대에도 월드베스트 상품이 지속적으로 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예상이다.

<김종윤기자 jy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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