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의 ‘대목’이라 불리는 추석연휴는 예년에 비해 대작 개봉이 줄었지만 쏠쏠한 재미를 맛볼 수 있는 기대작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
최근 우리영화의 흥행호조나 각종 리서치의 결과를 접어두더라도 예전부터 추석은 우리영화 잔치다.
이미 이달 초에 개봉된 ‘무사’와 ‘베사메무쵸’가 여름방학 시즌 흥행몰이를 했던 ‘엽기적인 그녀’와 함께 추석 연휴에도 계속 선전이 기대되고 있다.
‘영화보다 더 영화적이었다’는 미국 테러사건 이후 극장을 찾는 관객의 수가 줄어들었다는 보고가 있지만 세계 정세가 어려울수록 영화시장이 계속 성장해 온 것도 사실이다.
꿈과 웃음, 눈물과 폭력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현실을 비껴가게 해주는 또다른 출구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추석에 개봉을 준비중이거나 추석시즌을 염두에 두고 개봉됐던 작품은 크게 멜로드라마와 코미디의 강세가 두드러지지만 성룡의 ‘러시아워 2’도 건재를 과시할 것으로 보인다.
올 추석개봉영화 중 가장 기대작으로 꼽히는 작품은 단연 우리영화.
이영애·유지태가 출연한 ‘봄날은 간다’와 신은경·박상면이 주연으로 출연하고 조진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조폭 마누라’가 동시에 개봉함으로써 두 작품의 흥행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전체적인 예상은 제작사와 감독, 배우 등이 모두 스타급인 ‘봄날은 간다’의 우위가 점쳐지고 있으나 ‘조폭 마누라’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봄날은 간다’는 ‘8월의 크리스마스’로 섬세한 멜로의 감성적 코드를 보여줬던 허진호 감독의 두 번째 작품.
강릉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PD로 일하는 이혼녀와 연하의 사운드 엔지니어가 풀어가는 일상적인 연애를 다룬 영화로 누구에게나 한번쯤 있었을 법한 사랑과 이별의 기억을 그려내고 있다.
극적인 사건이나 과장된 연출 없이도 ‘봄날은 간다’는 일상적인 삶속으로 카메라를 들이대며 그들을 관조함으로써 관객들에게 공감을 얻어내는 작가적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이영애·유지태의 연기력과 함께 전편보다 훨씬 향상된 감독의 미학적 완성력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소리를 매개로 전달되는 시적인 감성의 영상과 애잔한 사랑의 기억을 더듬어가는 두 인물의 캐릭터가 관객의 시선을 잡아끈다.
조진규 감독의 데뷔작 ‘조폭 마누라’는 현재 흥행의 가장 안전한 장르로 자리잡은 ‘코미디 영화’.
고아로 자란 은진이 암흑계를 평정하며 보스의 자리에 오르지만 어렸을 때 헤어진 언니를 다시 만나고 죽어가는 언니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결혼을 하게 된다는 설정.
전형적이고 진부한 충무로 영화의 코드를 따르고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조폭 마누라’는 B급 영화의 향수를 달래주는 매력이 있다.
‘가위’ 하나로 수십 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암흑가의 보스로 군림하는 신은경의 액션연기는 어설프지만 나름대로 공들인 파워가 느껴진다.
또한 언니에게 ‘행복한 가정’을 보여주기 위해 동사무소에서 일하는 말단 직원 수일을 점찍어 결혼한 은진의 신혼기는 성적 역할이 뒤바뀐 부부생활을 통해 과장되고 억지스런 코미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시종일관 관객의 웃음을 분출시키기에 충분하다.
외화로 추석시즌 새롭게 개봉되는 영화들은 단연 로맨틱 코미디가 강세. 이미 개봉된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증명해 주었듯이 여성관객들에게 로맨틱 코미디는 여전히 힘을 지니고 있다.
가장 기대작으로 꼽히는 작품은 조 로스 감독의 ‘아메리칸 스윗 하트’.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이라 불리는 줄리아 로버츠를 비롯해 빌리 크리스털, 존 쿠색, 캐서린 제타 존스 등 스타급 배우들이 포진한 이 영화는 오스카상 수상 이후 한층 더 성숙해진 줄리아 로버츠를 만날 수 있다.
줄리아 로버츠가 맡은 역할은 그웬의 친구이자 매니저인 키키역이다.
영화 줄거리를 살펴보면 할리우드 최고의 영화배우 커플로 꼽히지만 별거상태에 있는 에디와 그웬은 두 사람을 재결합시켜 영화를 흥행시키고자 하는 영화사의 의도와 달리 계속 꼬이기만 한다. 그러는 와중에 에디는 오랜 친구로만 느꼈던 키키에게서 사랑을 발견하게 된다.
줄리아 로버츠는 애당초 그웬역을 의뢰받았지만 스타 역할을 맡았던 ‘노팅힐’에서의 이미지를 고려, 키키역을 선택함으로써 비평가로부터 변신에 성공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 작품은 또 전형적인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를 보는 기대감을 충족시켜주기에 충분하다.
또 하나 로맨틱 코미디의 감독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게리 마샬 감독의 신작 ‘프린세스 다이어리’는 누구나 한번쯤 상상하게 되는 꿈인 ‘혹시 내가 어느 나라의 공주가 아닐까’라는 막연한 동경을 실현시켜준다.
로맨틱한 사랑을 꿈꾸지만 볼품없고 수줍음 많은 여고생 미아에게 날아든 소식은 그녀가 제노비아의 왕관을 물려받게 될 공주라는 것.
하지만 왕실의 엄격한 법도와 품위를 익힌다는 게 쉽지만은 아닌 일이다. 평범한 여고생에서 공주로 화려하게 비상의 날개를 다는 앤 헤더웨이의 매력과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얼굴을 접하는 줄리 앤드루스를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이 작품을 보는 즐거움이다.
미국에서 개봉 후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린 이 영화는 이미 게리 마샬 감독과 줄리 앤드루스가 합류해 2편 제작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좀 더 애절한 사랑이야기라면 ‘스위트 노벰버’가 대기하고 있다. 지난 68년 제작된 동명영화를 리메이크한 이 작품은 매달 남자를 바꿔가며 사귀는 한 여자와, 일과 성공이 자신의 모든 것이라 믿었던 남자가 만나 한달간의 동거를 시작하지만 곧 서로가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든다는 내용.
지난 21일 개봉된 성룡의 ‘러시아워2’는 크리스 터커와 함께 공연한 전편보다 이야기의 구조가 훨씬 엉성해졌지만 여전히 성룡식 개인기를 외면할 수 없는 충분한 매력을 준다. 이미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한 장쯔이와 존론이 함께 공연하고 있지만 그들에 대한 기대는 금물.
하지만 좌충우돌 몸을 사리지 않고 연기하는 성룡의 진짜 액션은 10년 넘게 추석영화의 ‘선물세트’로 자리잡고 있으며 올해도 여전히 그의 건재를 확인하게 해준다.
가족영화로서는 유일하게 ‘쁘띠 마르땅’ 정도가 추석 연휴에 관객과 만나는 작품. 전신마비에 걸린 노인 앙트완과 소년 마르땅의 우정을 그린 영화다.
<영화평론가 엄용주 yongjuu@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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