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IT시대를 위한 하부구조>`五感 컴퓨터` 10년뒤엔 현실로

 PC가 탄생한 지난 81년 대다수의 시장전문가들은 PC가 가정에는 필요없다고 단언했다. 이 기기는 주로 프로그래머나 IT전문가의 일종의 제품 개발을 위한 일종의 계측기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한 것.

 지금은 컴팩에 인수돼 없어진 DEC의 창립자 켄 올슨은 “어떤 이도 PC를 집안에 두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그러나 불과 20년이 지난 지금 4억명의 PC 사용자들이 인터넷으로 연결돼 있으며 하루에 50만대 가까운 PC가 전세계에서 팔려나가고 있다. IT의 진보가 그려낼 향후 10년 뒤의 모습은 어떨까.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에이·아이(A.I.)’와 같은 인간형 로봇은 실현되기 어렵지만 최고의 피조물인 인간에 보다 가까워진 인간친화적 IT기기들의 등장으로 생활 속에 깊숙이 묻혀 버린 IT 세상을 그려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영원한 IT의 화두, 더 빠르게=세계 최대의 IT기업인 인텔은 ‘더 빠르게’라는 화두를 모든 IT 분야에 전파해온 기업이다. 지난 81년에는 4.77㎒ CPU를 선보였으나 지금은 이의 400배에 해당하는 2㎓ CPU를 출시했다. 이전에는 7시간 걸리던 계산 시간이 1분으로 단축된 셈이다. 인텔은 오는 2007년에는 현재보다 10배 빠른 20㎓를, 2010년께는 30㎓ CPU까지 출시할 예정이다.

 이 같은 성능의 PC가 출시되면 실감나는 3차원 입체영상의 홀로그램을 즐기고 현재는 불가능한 태풍의 진로 예측 등 기상 분야, 질병치료와 같은 의학 분야에도 적지 않은 파급효과가 기대된다. 인텔코리아의 윤상한 상무는 “CPU 성능 향상은 애플리케이션의 발전을 수반하기 때문에 보다 강력하고 사용하기 쉬운 애플리케이션의 개발을 돕게 된다”며 “CPU 고속화로 인해 음성인식·번역·3D 그래픽·가상현실 등의 기술 발전이 급진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개인의 PC를 묶어 슈퍼컴퓨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클러스터링 기술도 주목받고 있다. 네트워크 고속화와 CPU 고속화가 맞물리면서 수테라 혹은 수백테라급 연산이 가능한 슈퍼컴퓨터를 누구나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유선전화로 시작된 통신기술은 인터넷이란 걸작을 탄생시키면서 일반인에게 어렵게만 느껴지던 IT를 실생활로 안내하는 동인으로 작용했다. 현재 유선으로는 10Mbps, 무선으로는 144Kbps의 속도에 머무르고 있으나 10년 이내 일반 유선으로는 150Mbps, 무선으로도 50Mbps 속도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고화질 비디오인 MPEG2가 대략 7Mbps의 대역폭을 요구하는 점을 감안하면 동시에 7개의 고화질 영상을 이동시에도 즐길 수 있는 셈이다.

 인터넷의 새로운 주소체계인 IPv6의 탄생은 모든 정보기기에 지능을 부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전망이다. 사실상 무한대의 주소체계를 갖춘 IPv6 기술은 모든 정보기기에 주소를 부여해 시계를 통해 집에 있는 에어컨을 조작할 수 있게 되며 모든 정보기기를 공통의 통신망에 묶어내게 된다.

 ◇인간 친화적인 정보기기 등장=미국 레드먼드에 위치한 마이크로소프트연구소(MSR). 지난 9월 마이크로소프트의 최고 두뇌집단들이 모여 있는 이곳에서는 ‘센싱포켓PC’라는 차세대 운용체계가 선보였다.

 센싱포켓PC는 촉감·기울기·사용자 움직임·음성 등 주위 환경에 맞도록 PDA 환경을 바꿔주는 운용체계. 만약 PDA를 기울이면 스크롤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화면이 물 흐르듯 움직인다. 두 손을 사용해야 하던 정보단말기를 한 손으로 조작할 수 있는 운용체계가 선보인 것이다.

 IT의 급격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기술 진보가 가장 더딘 분야로는 인간과의 인터페이스 분야가 꼽힌다. 20년 전에 선보인 키보드나 마우스 등이 아직도 입력장치의 주종을 이루고 있다. 향후 이런 인터페이스 기술의 급진전이 예상된다.

 가장 활발히 기술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분야는 소형 지능형 단말기. 우선 쉽게 휴대할 수 있도록 시계에서부터 PDA 등에 이르기까지 소형화돼 생활 속에 파급된 정보단말기가 무수히 쏟아지고 있다. 정보단말기의 소형화에 이은 차세대 정보기기의 발전 방향은 ‘입는 컴퓨터’다. 안경에서는 원하는 화면이 단순한 손가락 움직임만으로 입력 가능해진다.

 다음 단계는 오감처리 컴퓨터다. 인간이 느끼는 색상, 빛의 밝기, 소리, 향기, 맛 등 자연현상을 디지털 신호로 포착하고 이를 무선통신망을 통해 전달, 자연현상까지 활용할 수 있는 꿈의 정보단말기 개발이 10년 후면 가능해질 전망이다.

 ◇IT 발전의 걸림돌은=이런 장밋빛 청사진이 그대로 이뤄질까. 최근 들어 이런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올해 들어 전세계적인 IT산업 경기가 급속히 냉각되면서 과연 예전처럼 IT산업에 대한 투자가 그대로 이어질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PC 출하대수가 16년 만에 처음으로 줄어들었는가 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겨진 3세대 이동통신사업권을 반납하는 기업도 나타났다. 이런 로드맵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투자가 필수요건인데 이런 분위기에서는 기술 혁신이 어렵다는 얘기다.

 시장 예측은 예측으로 끝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지난 60년대 ‘아톰’이란 만화영화가 일본에서 방영된 뒤 많은 사람들이 곧 사람을 닮은 로봇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지만 현재의 기술 발전 추세를 감안하면 10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돼야 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일본 문부성이 최근 3000여명의 일본 내 기술 전문가를 대상으로 정보통신 등 16개 분야에 걸쳐 실시한 향후 30년의 기술 예측조사 결과를 보면 엔지니어들은 그다지 기술 발전 속도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다. 이 설문에서 엔지니어들은 보통 5년 내 실현될 것으로 알려진 음성인식 및 제어가 보급될 시기를 2014년으로 봤으며 자동통역시스템은 2015년께 실용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가장 낙관적인 설문조사 결과는 인터넷 속도. 이들은 오는 2009년께 현재 초고속인터넷보다 15배 빠른 150Mbps급 통신서비스가 가능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이런 엔지니어들의 부정적인 입장에도 IT 분야의 기술 진보는 항상 예측을 뛰어넘곤 했다. 인텔 창립자인 무어 박사가 발표한 18개월마다 PC는 2배의 성능으로 진보한다는 ‘무어의 법칙’은 아직도 유효하다.

 과거 미국 PC 시장의 85년과 89년 양대 불황 역시 당시에는 2, 3년 지속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예상보다 짧게 각각 12개월과 18개월에 그쳤다. IT경기가 때로는 주춤하기도 했지만 그 이후에는 더 멀리, 높이 뛰곤 했다.

 △포스트 IT시대를 준비한다.

 세계적인 가전 업체인 소니는 지난 1분기 80년이후로는 처음 적자를 기록했지만 연구투자 비용을 줄이지는 않았다. IT업체가 기술 투자를 줄인다는 것은 미래를 포기하겠다는 의미다. 최근의 IT산업은 예전의 가전산업의 예처럼 국내 업체들이 뒤늦게 뛰어들어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에서 입지를 넓혀가는 형태로는 가능성이 없다. 이미 이러한 역할을 중국이나 대만, 인도가 차지했다. 이제 우리도 선진 경쟁업체와 거의 같은 시기, 혹은 미래 개발해 시장을 선점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시대가 온 것이다.

 차세대 IT 개발의 주체는 기업뿐 아니라 정부·연구소 모두의 몫이다. 미국·캐나다·일본·유럽 등 우리와 경쟁하는 선진국들도 차세대 IT 개발에는 기업·정부·학교·국가 연구소의 전방위 협력체제를 갖추고 있다. 정보통신부는 올해 들어 4세대 이동통신·포스트PC 개발사업 등 향후 10년을 목표로 한 국가 IT 개발에 시동을 걸었다. 이 계획은 오는 2010년까지 100Mbps급의 무선 이동통신, 인간의 오감을 전달해주는 차세대 지능형 단말기 개발 계획이 담겨 있다.

 산업자원부는 1년여의 산학연구를 통해 앞으로 10년간 우리나라 산업기술이 나아가야 할 바를 조망한 산업기술 로드맵을 발표했다. 산업기술 로드맵에는 디지털가전·무선통신기기·로봇·광섬유·전지 등 6대 기술이 1차 대상에 포함돼 있다. 이 로드맵은 분야별 기술 개발 비전 설정과 전략 마련을 위한 토대로 작용할 것이다.

 전세계가 IT 경기 위축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 국내 IT산업이 한 단계 재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는지도 모른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