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의 사회 -장 보드리야르 지음 -문예출판사 펴냄
“현재는 배고픔이 세계적인 문제인 것처럼, 앞으로는 피로가 세계적인 문제가 된다. 역설적이지만 이것들은 서로 배제하는 문제다. 왜냐하면 만성적이며 관리할 수 없는 피로는 관리할 수 없는 폭력과 나란히 풍요로운 사회에는 으레 붙어다니는 것이며, 특히 굶주림과 만성적인 빈곤이 극복된 결과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전(前) 공업화사회에서는 이 굶주림과 빈곤이 아직도 주요 문제이긴 하다. 따라서 피로는 탈공업화사회의 공통된 증후군으로서 극도의 이상현상이나 안락한 생활의 ‘역기능’과 같은 생활에 속하고 있다. ‘새로운 세기병’인 피로를 우리는 그밖의 아노미 현상과 관련시켜 분석해야 한다.”
메모: 물질적으로 풍요를 누리는 사회에 등장하는 새로운 유형의 폭력이 ‘목적이 없는’것처럼, 현대의 피로에도 이유가 없다. 그러나 내밀히 살펴보면 그런 것만도 아니다. 외견상 풍요로워 보이는 현대사회가 실은 내면적, 사회적 불균형으로 인해 ‘살기 불편한’ 사회라는 데 문제가 있다. 따라서 피로는 이러한 현대의 생존조건에 대한 현대인의 수동적 거부형태의 일종이며 그러한 사회조건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잠재적 ‘이의(異議)주장’이자, 공공연한 폭력으로 전환될 수 있는 잠재된 폭력이라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씀씀이의 규모나 소비의 질에 있어 괄목할 만한 성장을 구가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외면적인 풍요 이면에 심화되고 있는 경쟁구도와 스트레스가 우리를 조이고 있다. 개인의 능력을 존중하고 능력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겠다는 사회의 흐름 속에서 ‘물질적 풍요’와 ‘사회적 지위의 상승’이라는 열매를 따기 위해 ‘뭔가를 해야 하고, 하고 있어야 한다는’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강박증에 자신도 모르게 짓눌려 있는 것이다. 조직체 역시 끊임없이 발전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정체=도태’의 등식에 사로잡혀 탈진해가고 있다면 지나친 말일까.
‘이런 게 아닌데’ 하면서도 거스를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세기병’으로 등장하고 있는 이 피로의 문제가 나 자신과 바로 우리들이 몸담고 있는 조직의 문제로 대두되고는 있지 않은지 살펴볼 일이다. 이를 해소하고 재충전시키기 위해 더 많은 부대비용과 시간이 소요되기 전에 말이다.
<양혜경기자 hkyang@etne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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