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인 더 뉴스>한국기술투자 이정태 신임 사장

◆한국기술투자 이정태 신임 사장

 

 ‘IT에서 벤처캐피털로.’

 지난 90년대 대우통신 컴퓨터 수출의 신화를 몰고 온 이정태 전 대우통신 사장이 벤처캐피털로 자리를 옮겨 화제가 되고 있다. 이정태 사장은 지난 3일 열린 한국기술투자(KTIC) 주총에서 신임 대표이사 사장에 선임됐다. 큰 물(?)에서 놀던 이 사장의 이 같은 변신은 벤처캐피털업계 관계자들의 모든 이목을 끌 만큼 개인이나 조직에 있어 새로운 시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내 벤처캐피털업계의 맏형격인 KTIC의 사장을 맡게 된 이정태 전 대우통신 사장을 만나기 위해 대치동 코스모빌딩을 방문했을 때 하늘은 한바탕 비라도 쏟아부을 것처럼 찡그리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서갑수 전 회장이 머물던 대표이사실의 새로운 주인이 된 이 사장은 흐린 날씨와는 달리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긴장 탓인지 약간 상기돼 있으면서도 밝은 표정이었다.

 아직 남의 집에 와 있는듯 처음에는 약간 어색한 분위기였지만 이 사장은 대기업 계열사 사장까지 역임한 베테랑 경영인답게 그동안의 무용담을 시작으로 향후 KTIC의 투자전략 및 운영방안 등에 대한 얘기를 풀어갔다.

 “신임 사장으로 내정됐을 때 벤처 문외한이 어떻게 한국 최대 벤처캐피털 중 하나인 KTIC를 이끌어갈지에 대한 기대 반 우려 반의 시각이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염려가 기우였다는 걸 보여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려 섞인 주변의 시각을 알고 있지만 언제나 그래왔듯 묵묵히 스스로의 역할을 찾아 최선을 다하겠다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였다.

 “사실 산업 일선에 있다가 최신의 금융기법을 요구하는 벤처투자 쪽으로 자리를 옮겨 상당히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나 KTIC는 이미 새롭게 시작하는 벤처캐피털들과는 달리 일정 규모 이상으로 성장한 회사입니다. 이제는 시스템을 갖추고 한국이라는 우물 안에서 벗어나 세계 시장으로 도약하는 길이 남아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의 지식과 경험을 갖고 전문경영인으로서의 역할을 할 것입니다.”

 벤처캐피털업계에 뛰어들긴 했지만 이 사장은 사실 KTIC 신임 사장이라는 명패보다는 지난 3월까지 근무하던 대우통신 대표이사사장으로 IT업계에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지난 3월 갑상선암 판정을 받고 대우통신을 떠나기 전까지 대우통신에서 수출사업본부장·컴퓨터사업부문장·대표이사를 역임하며 해외사업과 구조조정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등 IT업계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컴퓨터·정보통신 분야에선 전문가 이상의 해박한 지식과 18년이라는 해외근무 경력에서 쌓은 국제감각만큼은 자타가 공인할 정도다. 특히 유럽 근무 당시 메이드 인 코리아로 일궈낸 대우통신 컴퓨터 수출 신화는 아직도 많은 뒷얘기를 남기고 있다.

 이 사장은 스스로를 ‘컴퓨터를 잘 알아서 대기업 사장이 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파리지사 근무 시절 유럽 컴퓨터 시장을 개척하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이 같은 경험은 오기로 컴퓨터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출 수 있게 돼 유럽 시장에 대우통신 컴퓨터의 깃발을 꽂는 데 성공한 것이다.

 “대기업은 99%의 성공 확률을 갖고 사업을 추진하지만 벤처캐피털은 99%의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1%의 확률을 보고 투자해야 한다는 점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벤처캐피털도 99%의 확률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대 화공과 동기생이기도 한 서갑수 전 회장과도 벤처와 대기업에 대한 이해 차이에서 많은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어쩌면 수많은 논쟁 속에서 서 전 회장은 자신이 갖지 못한 장점을 내게서 찾았던 것 같습니다. KTIC가 일정 규모 이상 성장한 만큼 대규모 조직에 맞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점을 인식한 것이죠.”

 수술 여파인 듯 약간 탁한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문을 연 이 사장은 어느덧 KTIC 최고경영자로서의 역할에 대해 액센트를 실어 표현했다.

 “앞으로 회사가 더욱 성장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조직관리와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갖고 있던 IT 및 정보통신 분야 지식과 대기업 조직관리 및 구조조정 등을 통해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대기업의 시스템과 KTIC의 벤처투자 노하우를 접목시켜 세계적인 벤처캐피털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지난 6월 말 비공식적으로 업무를 시작한 지 불과 1달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좀더 구체적인 운영방안에 대해 풀어놨다.

 “지금까지 누적투자재원만 약 7000억원으로 고유계정과 조합의 투자규모을 합한 규모가 내년 말께는 1조원을 돌파할 전망입니다. 또 올 상반기에만 모두 37개 업체에 238억원을 투자했으며 하반기에는 3분기 200억원, 4분기 250억원 등 모두 450억원을 추가투자할 계획입니다. 수치상으로도 KTIC의 투자 규모는 일정 수준 이상 올라섰습니다. 이제는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릴 때입니다.”

 이 사장은 벤처기업은 물론 벤처캐피털도 이제는 국제 경쟁력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식의 생각으로는 세계적인 벤처캐피털로 발돋움하는 것은 물론 국내 최고의 자리도 고수할 수 없다는 시각이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세계화를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상황과 가장 맞는 세계화를 만들어갈 생각입니다. 그래서 목표로 삼은 것이 중국·일본을 거점으로 한 아태 시장 공략입니다. 정서·문화는 물론 지리상으로도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입니다.”

 또 기존 KTIC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나갈 방침이다. 이를 위해 지난 6월 부임 직후 아서 앤더슨에 컨설팅을 의뢰했다.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서는 제3자의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해서다.

 “지금까지 KTIC는 2∼3년 후 부상할 수 있는 테마를 집중 발굴, 꾸준한 성장을 해올 수 있었습니다. 벤처사업 단계별로는 초기기업에 대한 투자가 주효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투자원칙은 고수해나갈 계획입니다. 단 지금까지가 벤처캐피털리스트의 능력에 의존한 투자였다면 앞으로는 벤처캐피털리스트와 시스템이 함께 작용하는 투자의 틀을 만들어나갈 계획입니다.”

 이와 함께 이 사장은 지난 99년부터 시작한 기업구조조정사업 분야를 벤처투자부문과 함께 KTIC의 양대 축을 이루는 사업으로 성장시켜 나갈 것이라는 구상을 밝혔다. 스스로가 대우그룹의 구조조정 한가운데서 역할을 한 만큼 이 분야에 대한 중요성과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KTIC는 지난해 당기순이익 732억원을 기록, 창투사 가운데 최고의 수익률은 물론 국내 기업 중에서도 자기자본이익률(ROE)이 3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실적보다는 앞으로의 투명성 확보가 KTIC 성장의 열쇠가 될 것입니다.” KTIC가 겪은 문제를 염두에 둔 말이었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

 

 <약력>

 △46년 서울 출생 △65년 부산고 졸업 △69년 서울대 화학공학과 졸업 △69∼70년 충주비료 입사 △73년 대우 입사 △89년 대우 파리지사장 △92년 대우통신 DT유럽 부장 △96년 DT 유럽 상무 △96년 대우통신 수출사업본부장 상무 △97년 수출사업본부장 전무 △99년 수출사업본부장 부사장 △99년 컴퓨터사업부문장(부사장) △99년 대표이사사장 △2001년 한국기술투자(KTIC) 대표이사사장 △취미:골프·조깅 △가족:송주연 여사와 1남1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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