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서 야당이 분열하면 여당은 손쉽게 승리한다. 야권이 똘똘 뭉쳐 여당과 맞붙어도 힘에 벅찬 판에 선거 때만 되면 야당은 갈라지고 후보가 난립, 여당에 승리를 헌납한다. 유일한 예외가 지난 97년 대선으로 당시에는 오히려 여당이 분열돼 50년 만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어디 정치판뿐이겠는가. 시장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종종 목격된다. 한두개 특정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분야의 경우 후발주자들이 난립할수록 독과점업체의 철옹성은 더욱 단단해진다. 목숨을 건 생존투쟁은 후발주자들간의 일이 된다. 여당격에 해당하는 막강한 독과점사업자의 견제가 가장 큰 이유이긴 하지만 후발주자들 역시 당장의 앞가림에 바빠 이들을 상대로 한 연대투쟁, 공동대응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오히려 저마다의 입지 확보를 위해 대립하고 갈등한다.
지난 25일 정부가 차세대이동통신(IMT2000) 동기식 사업자 선정기준을 발표, 동기사업 향방은 물론 통신 3강체제의 밑그림이 가닥을 잡게 됐다. 이같은 긍정적 전망은 정통부의 정책이 이해집단이 대부분 받아들일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동기사업권을 주도하는 LG텔레콤과 참여업체들에는 사전합병 허용, 출연금 경감 등의 요구를 거의 들어줬다. 한국통신과 SK텔레콤에도 2∼3세대 로밍 의무화 완화, 서비스시기 연기 등 당근을 제시했다.
정통부는 파워콤 주인찾기까지 적극 지원, 비록 불발됐지만 양승택 장관이 관련업체 사장들의 만남에도 참여하겠다고 밝혔을 정도다. 하나로통신에도 ‘성의’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동기 사업자 선정 정책은 한마디로 3강체제 유도를 위해 어느 곳 하나 섭섭지 않게 두루 챙겨준 것이다. 정부는 또 양 장관이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한 “사업자 선정을 통해 통신시장을 3강체제로 유도하겠다”는 정책목표를 현실화시켰다는 점에서 일관성을 유지했다. 양 장관은 자신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증명하면서 ‘공’을 시장에 넘겨준 셈이 됐다.
그렇다면 동기사업자가 제대로 출범하고 급기야는 한국통신·SK텔레콤에 버금가는 3강이 탄생할까. 아직은 모든 것이 불투명하다. 1000여개에 이르는 동기컨소시엄 참여업체들간에 언제 어디서 갈등이 불거져 나올지 모른다. 이미 참여기업간에는 지분·기업인수 등을 둘러싸고 한차례 홍역을 치른 경험이 있다. 약체끼리 모여 경쟁력이 있겠느냐는 일부의 시각도 부담이다.
그러나 긍정과 부정은 늘 교차하고 동전의 양면처럼 동시적이다. 후발주자들이 이해가 엇갈리면 한발씩 물러나 해결책을 찾아내고 한목소리를 낸다면 정부나 한통·SK텔레콤에는 무시못할 존재가 된다. 동기사업에 참여하는 기업들의 호발생 가입자는 700만명이 넘는다.
현 2세대 시장에서는 정부의 규제가 없고 한통과 SK텔레콤이 ‘독한 마음’만 먹는다면 버텨낼 후발주자가 거의 없다. 그래서 이번 동기사업자 선정은 후발주자들에는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터전을 마련한 것이나 다름없다. 슈퍼파워 한통과 SK텔레콤에 대항, 3강의 한 축으로 당당히 일어설지 아니면 2세대의 복사판이 될지 이제부터는 동기사업에 뛰어든 후발주자들 각자의 선택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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