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미래 모습 그리기

◆박재성 논설위원

  

 한 10년 넘게 보지 못했던 사람으로부터 갑자기 연락을 받으면 누구나 반갑고 만나보고 싶어질 것이다. 엊그저께 그렇게 돼서 H라는 사장을 만났다. 대충 안부가 오간 다음 기자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자 “인터넷전화 사업에 착수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인터넷전화가 유망할 것이라며 나에게 동의라도 구하려는 듯 여러 가지 정황을 든다.

 그 사장의 얘기를 듣자마자 나는 머릿속에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컨버전스(융합)가 떠올랐다. 데이터통신을 주로 하는 인터넷과 음성통화를 하는 전화의 결합체인 인터넷전화는 컨버전스의 산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의 말은 얼마 전 정보통신업계 전문가들의 모임인 미래포럼에 참가했다가 화제가 된 ‘차세대 인터넷에서 주 단말기가 무엇이 될 것인가’라는 것과 곧바로 오버랩이 되면서 나의 머릿속은 무척 복잡해졌다. 인터넷전화가 컨버전스의 추세를 반영하고 있지만 그것이 앞으로 과연 유망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내리려면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현재의 인터넷에서는 주로 데스크톱PC와 노트북컴퓨터가 인터넷에 접속하는 단말기지만 차세대 인터넷에서는 과연 무엇이 주단말기가 될 것인지는 그리 쉽게 예단할 성질의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메가트렌드가 되고 있는 컨버전스라는 측면에서 보면 차세대 인터넷에서 유무선의 통합추세는 대세다. 또 인터넷 접속 단말기로 ‘유선=컴퓨터’ ‘무선=이동전화 또는 개인정보단말기(PDA)’라는 현재의 등식은 차세대 인터넷시대에 가면 성립하지 않을 개연성이 크다.

 그렇다고 해서 차세대 인터넷시대에는 가령 휴대형 컴퓨터에 이동전화단말기나 PDA 등 여러 단말기가 지닌 기능을 모두 넣을 수는 있지만 그러한 복합형 단말기가 주류를 형성하게 될지도 미지수다.

 벌써 수년 전 인텔의 앤디 그로브 최고경영자(CEO)가 컴퓨터업계와 가전업계를 흥분하게 했던 “PC냐 TV냐”는 논쟁도 있었지만 여전히 PC는 PC대로, TV는 TV대로 각자 자기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늘날 PC로 TV를 시청하고 또 TV로 인터넷에 접속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TV는 안방이나 거실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PC도 자기의 영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후로도 복사기와 팩시밀리, 프린터를 한 대로 만들려고 하는 이른바 사무용 ‘복합기’도 등장했으나 그리 큰 호응을 받지 못하고 현재까지 각 제품은 각자의 주 기능을 지닌 채 다른 제품의 기능은 ‘액세서리’처럼 달고 있다.

 복합기가 인기를 끌지 못하는 것은 단일 기능 제품이 그것에 비해 ‘너무나’ 사용하기 편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터넷전화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차세대 인터넷 단말기가 되는 ‘영광’까지는 거머쥐지 못한다 하더라도 일반 유선전화와 이동전화단말기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필자는 H사장을 볼 때마다 항상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미래산업을 세웠던 정문술씨다. 나는 두 사람을 비슷한 시기에 취재하면서 만났고 둘 다 반도체장비사업을 했다. 정문술 사장은 부천의 철공소와 같은 조그만 공장에서 시작해 실패를 거쳐, 마침내 테스트 핸들러로 성공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역시 반도체장비사업을 했던 H사장에게서는 빛을 볼 수 없었다. 사업에서 성공과 실패를 가름하는 요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품목 선정에서도 미세한 차이가 있었다.

 차세대 인터넷시대를 주도할 단말기쯤으로 여기고 인터넷전화사업에 뛰어든 H사장이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까. 흔히 사업에서 성공하려면 때를 잘 타야 한다고 말한다. 어쩌면 H사장이 인터넷전화가 널리 사용되는 ‘때’를 만난다면 아무래도 성공할 가능성도 높을 것이다.

 조만간 눈앞에 다가올 차세대 인터넷시대를 대비해 관련 사업에 매달리고 있는 사람이 비단 H사장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그들이 정보기술(IT)산업처럼 변화가 심한 분야에서 모두가 빌 게이츠처럼 ‘족집게 사업가’는 될 수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수요가 급증할 수 있는 ‘확률 높은 품목’이라도 제대로 선택했으면 한다. 산업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사업성 높은 품목을 선택하여 성공을 거두는 것은 사업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 측면에서라도 우리는 파장이 매우 클 것으로 예측되는 차세대 인터넷만이라도 남보다 앞서 미래의 가장 가까운 모습을 예측, 그림으로 그려보는 것은 의미있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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