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기술의 확보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벤처기업의 특성상 이공계 대학교수나 연구진들이 창업을 하거나 기업에 필요한 전문적 지식을 제공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이 종종 비전문분야에까지 확대되거나 일부지만 단순히 이름걸기식으로 이뤄져 실질적 경제가치 창출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벤처상담창구에서 만난 몇몇 이공계 교수의 창업사례를 살펴보자.
캐드(CAD)분야가 전공인 A교수는 졸업 준비중인 제자와 함께 무선 작동 로보트를 개발해 실험실 창업을 한 후 본격적인 사업화를 위해 생산계획·마케팅전략·투자유치 등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들이 직접 설계·제작한 시제품은 기능콘셉트를 현실적으로 구현한 골격상태에 불과해 상품화하기까지 많은 부문에서 추가 연구개발이 필요했지만 기계적 성능은 당시 인기를 끌고 있던 외국제품에 충분히 견줄만 했다.
A교수는 제자인 창업자가 사업경험이 부족하므로 자리를 잡을 때까지 기업경영 전반에 관해 도와줘야 했다.
이같은 사례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일이다.
필자의 생각에는 A교수의 일차적 역할은 무엇보다도 개발제품에 대한 엔지니어링부문의 완성도를 높이고 대량생산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다. 보다 가볍고 튼튼하며 빠르고 다양한 동작이 가능한 무선로보트. 또 이를 더욱 저렴하게 만드는 방법은 무엇인지, 개선할 점은 없는지 등 지속적인 연구와 실험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뼈대에 어떤 캐릭터를 씌우고, 제품의 가격을 얼마로 하며, 필요한 자금은 어떻게 조달해야 하는가는 창업자가 고민해야 할 일이지 A교수의 몫은 아닐 것이다.
또 다른 사례가 있다. 현재 중견 인터넷기업의 CTO인 B이사는 당초 대학교수로 재직 중 IT솔루션업체를 창업해 그 업체의 CEO를 겸하고 있었다. 하지만 창업한 회사를 현재 인터넷기업에 합병시키면서 자신이 일으킨 사업에 대한 기술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고민끝에 교수직을 사임했다.
그가 교수직을 사임한 데는 교수창업에 대한 학교 당국이나 교수사회가 갖고 있는 배타적 시각에 대한 부담도 없지 않았지만 그가 시작한 벤처사업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역할이 교수직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벤처기업의 사업계획서를 검토하다 보면 이공계뿐만 아니라 상경계 대학 교수들도 매우 다양한 형태로 벤처사업에 참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전문성과 다양한 경험을 가진 각계 주체들이 직접 창업을 하거나 이를 지원하는 일은 장려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사업분야나 담당한 직무가 자신들의 전문영역을 벗어나 있다든지, 여러 회사의 소개서에 어느 교수의 이름이 두루 올려져 있을 경우, 우리의 벤처가 가야할 길이 아직 멀다고 느끼는 것은 B교수만의 독백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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