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타워]정통부와 업체 사이

 과천 경제부처를 담당하다 정보통신부로 출입처가 바뀐 기자들이 정통부 청사에 며칠 출근하고 나서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여긴 업자들이 왜 이리 많아”다. 과천청사의 경우 ‘업자(기업관계자)’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데 정통부에는 늘 붐비는 것을 두고 신입기자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이다.

 사실이다. 정통부 청사에서 기업관계자들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지간한 국내 IT업계 고위 관계자라면 인사차 혹은 현안이 걸려서, 그도 아니면 애로사항을 하소연하기 위해 정통부를 자주 찾는다. 정통부 역시 각종 정책현안을 설명하거나 기업의 의견수렴을 위해 다양한 회의를 개최한다. 아마도 정통부가 정부부처 가운데 기업인들에 가장 인기(?) 있는 부처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업자들로 붐비는 정통부는 바람직한 모습이다. 기업이나 국민의 현장 목소리를 가장 가까이에서 듣고 정책에 참고·반영하는 일은 반길 만하다. 더욱이 관료들의 가장 큰 병폐 가운데 하나인 군림형 권위주의를 털어내고 민생에 다가가 정책을 국민의 ‘체감온도’에 맞추려는 노력은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게다가 정통부 정책은 과거의 재무부 이상으로 업계(IT분야)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규제권까지 갖고 있다. 이런 판에 기업 밀착형, 국민 밀착형 정책의 발굴과 집행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여타 부처의 모범이 된다. 그 대표적 성공사례가 정부와 민간기업, 국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추진한 국가 정보화 사업이다.

 그러나 뭐든지 도가 지나치면 뒷말이 나오게 마련이다. 평상시에는 이같은 관계가 순기능으로 작용하지만 기업의 사활이 걸린 현안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기업인들은 혹여 정책이 자신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입안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서로의 논리와 입장을 들고 정통부를 찾는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다 보면 기업들은 사소한 문제까지 정통부만 쳐다본다. IMT2000사업자 선정 당시에도 모든 해당기업의 경영자가 정통부 장관과 담판을 시도했을 정도다. 기업들은 그 결과가 자신의 이해에 반한다면 정책의 정당성은 차치한 채 “정통부가 누구누구 편이어서 그렇게 됐다”는 등의 엉뚱한 불만을 털어놓는다. 한마디로 정통부는 기업과 너무 가까이 있다 보니 구설수에도 오르고 모든 정책부담을 온 몸으로 안게 되는 것이다.

 정통부가 완충장치 없이 모든 정책의 입안과 결과에 무방비로 노출되어서는 곤란하다. 특히 기업과의 관계에서 사전조율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억울하겠지만 되새길 만한 내용이다. 정통부는 사업자 선정이나 표준 결정, 구조조정 등과 같이 민감한 문제는 업계 차원의 조정을 유도하는 사전 필터링 또는 완충장치를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 민간에는 협회도 많고 위원회도 수두룩하다. 일차적으로 이런 곳을 통해 기업의 이해를 거르고 그도 모자라면 정부가 나서면 된다.

 정통부와 업계가 직접 맞닥뜨려 돌파구를 찾지 못했던 IMT2000 표준 결정과정에서 전문가들로 협의회를 구성, 여기서 물꼬를 튼 것처럼 기업의 이해가 상반되는 예민한 사항은 우회하는 것도 정통부의 부담을 더는 방법이다. 정통부와 업체 사이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관계’가 정답이다.  

< 이택기자 ety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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