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통신 역사는 보조금 지급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최근 이동전화 대리점마다 단말기를 ‘헐값’에 판다는 안내문을 내걸고 도우미들은 행인을 붙잡고 가입을 권유하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이동전화 단말기를 10만원 이상 주고 샀다고 얘기하면 대번에 ‘얼간이’소리를 듣는다. 가입비만 내면 신형 단말기를 10만원 내에 구할 수 있고 대형 유통점에서도 다리품 조금만 팔면 공짜수준의 단말기를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사업자는 단말기 가격보다 비싼 김치냉장고를 경품으로 주는 웃지못할 일도 스스럼없이 행하고 있다. 급기야 어떤 사업자는 우수고객을 단말기 분실 보험에 들어 놓고 일부러 단말기 분실신고를 한뒤 보험을 타내 단말기를 교체하는 신종 보조금 수법마저 등장했다.
가입비마저 내지 않아도 된다. L카드회사 대리점에서는 자사 카드에 가입하면 PCS 단말기를 무료로 준다며 가입자를 유치하고 있다. 카드는 1년간, 이동전화 서비스는 2년간 해지할 수 없다는 조건 아래에서다.
이동전화사업자들은 이같은 편법 보조금 경쟁의 피해자는 자신이라며 핏대를 올린다. 보조금 부활은 절대 안된다며 자신보다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우는 사업자들을 강하게 규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타사업자의 편법 보조금 지급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난하면서도 자사의 편법 보조금 지급에 대해서는 눈감아달라는 눈치다.
더 우스운 것은 통신위다. 지난달 단말기보조금 위반행위가 재발될 경우 형사고발한다던 통신위는 솜방망이만을 휘두르고 있다. 7000여건이 넘는 위반행위가 적발된 SK글로벌은 ‘초범’ ’별정사업자’라는 이유로 1억원의 과징금을 받았고 십여차례 전과가 있던 다른 이동전화사업자들도 너무 가혹하다는 통신위원회의 아량에 전과 비슷한 과징금 처분으로 끝났다.
신종 보조금제도인 분실보험에 대해서도 ‘허위 분실보험을 이용해 보험금을 타낸 가입자는 보험사기죄, 사업자는 교사죄에 해당된다’ ‘아마도 형사사건 같다’며 통신위와 관련없다는 뉘앙스를 애써 풍기고 있다. ‘사건의 경중을 가려 형사고발조치를 하겠다’며 칼을 갈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통신사업자에 대한 공정경쟁 문제를 다루면 전문성이 떨어진다며 통신위원회의 역할강화를 외치던 올초 그 당당했던 규제기관은 ‘엄포기관’으로 전락해 버렸다.
SK텔레콤·SK신세기통신의 가입자점유율 낮추기로 촉발된 이동전화시장의 격변기. 그속에서 단말기 보조금이 존재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우리나라에는 ‘규제기관이 없기 때문’이다.
<정보통신부·김규태기자 star@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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