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IT정책 조정력 부재

 “비록 양 부처 장관이 서면 합의한 사항이 아니더라도 담당 국장·과장이 의견을 모은 내용인 만큼 이를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한 위약이다.”(정보통신부)

 “결코 합의한 바 없으며, 정통부측의 희망사항이자 일방의 견해였을 뿐이다.”(산업자원부)

 저잣거리에서 촌부들이나 벌일 법한 이해다툼이 최근 전자지불 표준화 문제를 놓고 산자·정통 양 부처 사이에 극렬하게 벌어지고 있다. 본지 5월 9일자 13면 참조

 급기야 모든 정보기술(IT) 정책과 관련된 부처간 영토분쟁을 없애겠다고 감사원이 나서고 금융 주무부처인 재경부가 양 부처 의견조율을 시도중이지만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양 부처 실무국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며 ‘명분있는’ 싸움인 만큼 승리를 자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사소한 재산권 문제를 놓고 벌이는 민사소송을 보는 듯하다.

 IT정책과 관련한 부처간 주도권 다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에 전자지불표준화 분쟁도 새삼스럽지 않다. 조속한 해결을 바라며 전자지불표준화를 지켜봤지만, 이같은 수순은 이미 예상된 결론이었다는 게 기자의 솔직한 생각이다. 국가적인 대의에 몸담고 있는 공무원들에게는 자신의 업무가 국가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자존심과 열의가 ‘박봉’에 우선하는 동력이다. 그만큼 자신들의 업무에 욕심도 있는 게 당연하다. 부처 이기주의라는 비판은 마땅치 않다고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지불표준화 문제가 불거진 상태에서 마치 해결된 것처럼 ‘표준화로드맵’이 완성됐다고 양 부처 명의의 보도자료(지난 10일자)를 배포하는 유치한 발상만 빼면 말이다.

 오히려 문제는 정책조정력의 부재다. 그리고 실종된 정책조정력은 정부 차원에서 IT산업에 대해 무지하고 비전이 없다는 데서 기인한다. 지난 95년 정통부 탄생이래 IT 정책분쟁은 숱하게 있어왔지만, 청와대나 국무조정실에서도 강제가 아닌 협의에 의한 조정을 유도해낸 적은 없다. 국가정보화전략회의나 경제장관회의, 전자상거래정책협의회 등 장관급 협의채널도 존재하지만 유명무실하긴 마찬가지다. 감사원이나 재경부가 전자지불표준화 주무부처로 누구 손을 들지 모르지만 일회성 처방은 답이 아닐 것이다. 조정력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인 한국의 IT정책에 대해 다시한번 희망을 가져보는 것이 욕심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디지털경제부·서한기자 hseo@etnews.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