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산 제대로 쓰자](7)연구를 위한 연구

지난 6일 청주 공군 ○○부대 비행장. 일단의 연구진이 그동안의 연구결과를 점검하는 현장시험이 이뤄졌다. 이른바 공기부양열차의 모의 시험현장이다. 한국과학재단으로부터 총 1억8000만원의 연구비를 지원받아 추진되고 있는 ‘공기부상 전동 운행체를 이용한 차세대 초고속 지상운송시스템’의 중간연구 시험이 진행됐다. 한국과학재단의 특정기초연구과제로 총 5년 연구프로젝트 중 2차연도 연구결과에 대한 시험이 성공한 후 많은 관심을 불러 모았다.

 비행체의 날개가 지면근처에서 운항할 때 나타나는 지면효과를 이용해 1m 높이의 지면 위를 떠서 시속 500㎞ 이상 속도로 운행할 수 있는 공기부상 전동운행체(AEV:Aero-levitation Electric Vehicle)를 개발한다는 게 연구목표다. 연구팀의 목표대로라면 이른바 영화 ’토탈리콜’과 같은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떠다니는 승용차가 등장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다.

 공기부상운송체 기본설계를 완료하고 이날 20분의 1 크기 축소모형을 이용한 비행실험에 성공한 연구팀은 서울∼부산간을 1시간 안에 주파할 수 있는 길이 30m, 폭 15m의 100인승 AEV를 10년 안에 실용화하는 등 국내 초고속 교통시스템 개발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흥분했다. 이론적으로 AEV는 바퀴와 지면 사이에 마찰력이 없어 순수 공기저항력만 받으며 적은 동력으로 고속비행을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차세대 지상운송시스템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시스템의 실용화와 효율성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이 많다. 9년간 230억원 이상의 연구비를 쏟아붓고서도 ‘녹슨 기찻길’로 한국기계연구원에 방치되어 있는 자기부상열차의 경우처럼 ‘연구를 위한 연구’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다.

 자기부상열차 역시 기초연구부터 시작해 연구를 계속해왔지만 결국 정부나 지자체가 이를 도입하기를 기피하는 바람에 3년째 낮잠을 자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실용화를 제쳐두고라도 연구결과의 부산물이 다른 연구분야의 기초기술로 활용되기는 하겠지만 정부가 ‘뒤를 책임지지도 못할’ 연구과제에 국가연구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며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대해 연구팀은 “공기부상 지상용 운송체는 순수 국내 과학자들의 기술로 개발되고 있고 이와 유사하게 일본 동북대학교 연구팀만이 공기부상열차(aero train) 에 대해 연구하고 있을 정도로 최첨단 분야”라며 “정부가 실용화 관련 연구비를 전액지원할 경우 실용화에는 자신있다”는 입장이다. 이 연구프로젝트가 완료된 후 정부가 실용화를 미룰 경우라도 항공·토목·전자제어·전력기술 등 관련기술의 연구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구책임자인 조진수 교수는 “현재 5년 프로젝트로 연구중인 연구과제의 최종목표는 당장 실용화를 위한 최적시스템을 설계하는 데 있다”고 말하고 “연구팀으로서 당초 목표인 실용화를 위한 기본설계를 실현시켜 나가고 있는 만큼 향후 실용화 여부는 정부가 정책적으로 결정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연구책임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이론이나 실질연구를 통해 도전하고 싶은 것이 당연하며 연구성과의 상용화 여부는 정부몫이라는 얘기다.

 과기부의 고위 관계자는 “실용화만을 위해 연구개발에 나선다면 기초연구는

물론 미래지향적인 연구개발과제는 투자효율면에서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미래기술의 경우 연구 자체만으로 나름대로 관련기술을 축적할 수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예산이 언제 뒷받침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실용화 기본설계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주장도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다.

 원로과학자인 P박사는 “정부가 미래기술 개발에 나설 경우 실용화까지 꾸준한 R&D투자를 뒷받침할 수 있는 큰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연구과제 선정부터 면밀한 연구기획작업을 거치는 등 과제선정에 신중을 기하고 일단 선정된 연구과제에 대해서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원칙을 정해 장기적이고 일관성있는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근시안적인 과제선택이 ‘연구를 위한 연구’를 양산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정창훈기자 ch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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