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북한은 최근 들어 과학기술을 21세기 산업정책의 핵심으로 규정했다. 99년 11월에는 전자공업성을 신설했으며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디지털경제를 학습하기 위한 열기도 높다. 남북경협 분야에서도 IT협력이 다른 분야에 비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북한의 IT산업 도약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90년대 중반 최악의 경제 위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면서 새로운 발전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북한의 입장에서 과연 IT산업이 도약의 돌파구가 될 것인가.
제조업 비중이 낮아 산업 연관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투자 여력이 부족한 저발전 국가에서 IT, 특히 소프트웨어산업은 매력적인 목표가 될 수 있다. 교육 수준이 높은 양질의 노동력이 있다면 말이다. 이런 점에서 인도나 아일랜드 모델이 중요한 시사점을 줄 수 있다.
오랫동안 후진국으로 여겨지던 인도가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도약하고 ‘서유럽의 환자’로 일컬어지던 유럽의 소국(국토면적 7만㎢, 인구 363만명)인 아일랜드가 2000년 IMD 국가경쟁력 세계 7위로 부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우수한 인적자원과 저렴한 임금, 파격적인 우대조치를 통한 외자유치 정책과 소프트웨어산업 육성정책 등을 들 수 있다. 세계적인 디지털경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정책적 의지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국가적 역량을 집중할 수 있
는 정책적 노력의 결실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국제적 개방이다. IT, 특히 소프트웨어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술 변화의 신속성과 급속히 변화하는 시장에서의 수요 대처 능력이 요구된다. 양국 모두 미국 신경제의 부상이라는 타이밍을 적절히 포착했다. 인도의 소프트웨어산업은 초기에 주로 미국 기업들의 아웃소싱 활성화에 힘입어 급속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최근 들어 유럽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미국이 소프트웨어 분야 수출의 5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아일랜드 역시 외국계 기업 중 미국의 비중이 40% 이상이다.
인도가 글로벌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미국과 12시간의 시차가 있어 사실상 24시간 가동이 가능하며,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해 미국 고객과의 접촉이 용이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동안 꾸준히 미국 등에 진출한 우수 인력들이 귀국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일랜드의 성공에는 미국 내 아일랜드 출신의 역할이 주목된다. 미국 내 아이리시는 그동안 대통령을 3명(케네디·레이건·클린턴)이나 배출했으며, 아일랜드인들은 최소 1명 이상의 친족을 미국에 두고 있을 정도로 많다. 미국의 대 아일랜드 투자가 집중적으로 확대되는 시점 역시 클린턴 재임 중인 90년대였다.
물론 외국 자본, 특히 미국 신경제의 하청기지화를 통해 부상한 이들 국가의 소프트웨어산업을 대외적 민감도가 높고 국내적인 산업 연관효과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의견도 있다. 이들 국가 앞에는 산업구조 고도화와 국내적 생산 기반의 확대라는 과제가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인도나 아일랜드의 사례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북한은 국제적 네트워크화를 이루는 데 불리한 점이 많다. 언어의 제약과 자립노선이라는 정치적 이데올로기, 그리고 여전히 미국의 테러국가로 지정돼 있는 적대적 국제환경이 존재한다. 남북 사이의 협력이 그 틈을 어느 정도 메울 수는 있다. 그렇지만 남북 IT 교류에서도 일반적 성공변수가 적용된다. 남북 IT 교류 역시 좀더 이른 시간에 더 빈번한 접촉을 할 수 있는 네트워크 구축과 정보 인프라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 동시에 가격경쟁력을 보장할 수 있는 임금 및 생산성 수준의 보장과 적극적인 투자환경 조성도 필요하다. IT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보 개방과 국제화가 핵심변수라는 점을 북한이 인식할 때, 북한의 IT산업 도약은 가능
하며 남북 IT 교류도 성공할 수 있다.
serikyc@seri21.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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