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원창 부국장대우 과학기술부장 wcyoon@etnews.co.kr
우리나라가 지향하는 21세기 지식경제강국 또는 부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선 과학기술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기업의 경쟁력이나 산업의 성쇠, 국가의 명운이나 인류문명의 진보까지가 과학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기술개발과 이용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익히 듣고 보고 배우고 있다.
때문에 대통령을 비롯해 공직자, 정치인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더욱이 우리가 IMF 경제위기를 헤쳐오면서도 타 부문과 달리 과학기술 투자를 우선적으로 늘려왔고 올해도 정부 총예산의 4.4%를 연구개발 예산으로 배정해 놓은 상태다.
올해 제34회 ‘과학의날’ 행사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치사를 통해 과학기술자들이 연구개발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 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연내 과학기술인들의 사기진작을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 추진하겠다고 했다. 또 과학기술부 장관도 시간이 날 때마다 대덕연구단지를 방문해 정부의 정책설명과 함께 애로사항 해결에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과학기술 우선정책에도 일선에서 연구에 종사하고 있는 과학기술자들의 표정은 별로 밝아진 것 같지 않다. 현장에서 느끼는 과학기술정책 성취도에 대한 체감지수는 그만큼 높지 않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유는 무엇일까.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어온 정부출연연구소의 구조조정, 연구개발의 특성도 모르면서 투자에 비해 성과가 없다고 비판만 해대는 정치가들, 그리고 획일적으로 강요되는 최근의 정년단축 움직임 등 과학기술자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거대한 바람에 이래저래 시달리다가 이제는 무기력하게 포기한 형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때 과학기술노동조합을 통해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강하게 피력해오던 연구원들이 요즘은 어려운 처지를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지도 않고 있다. 그저 자신이 연구에 전념할 분위기가 맞지 않다고 느끼면 조용히 떠나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연구원들 사이에 팽배한 듯하다.
기술선진국으로 도약하느냐, 낙오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는 우리나라의 과학기술계에서 우선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수한 두뇌를 확보하고 이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연구풍토 조성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활기 넘치는 연구분위기 조성 없이는 우수 과학기술인력 유치가 소용없다는 뜻이다.
이의 배경에는 연구환경이나 조건개선보다 과학기술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경시풍조가 크게 바뀌지 않고 있는 데 근본원인이 있다. 말로만 전문성과 과학기술자 우대를 강조하면서도 기술을 모르고는 올바른 판단이 어려울 듯 싶은 중요한 자리에 문외한을 앉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중국이나 여러 선진국처럼 과학기술자가 국가의 많은 중요 직책을 맡는 것은 기대하지 않더라도 전국구 국회의원 중 과학기술계의 대표로 추천된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또 행정부를 보면 일본만 해도 행정고시보다 기술고시 출신의 공무원이 훨씬 많은 데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 고위직의 경우 행정고시 출신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남을 탓하기 전에 과학기술계가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부터 돌아보는 것도 필요하다. 스스로 자긍심을 가져야 남들도 존중해주게 마련인데 과연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자들은 그 동안 자신과 동료들을 충분히 존중해 왔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부정적이다. 우리의 과학기술자들은 동료의 업적과 능력을 인정하는 데 매우 인색하다. 예컨대 같은 연구업적이라도 외국 학자의 논문을 인용하지 한국에서 이루어진 일은 무시하는 일이 많다. 오히려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비판하고 그 성과를 깎아 내리기 일쑤다. 이같이 태도는 과학기술자들의 전체적 권위를 실추시키고 있다.
현재 정부가 연구분위기 활성화에 다각적인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만큼 이제는 과학기술자들이 나서 화답할 때다. 망쳐진 연구분위기를 오로지 정부책임만으로 떠넘길 수 없다. 공정하고 투명해야 할 경영혁신을 정부의 방침에 끌려다녀 소신없이 추진하지 않았나 하는 자체 반성도 필요하다. 또 아집 때문에 의견이 다른 상대방을 비방하지 않았나도 반추해봐야 한다. 동료끼리 서로 존중하면서 성과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아야 연구분위기도 살아난다.
이와 함께 원칙에 어긋나는 외부의 요구에는 과감히 “노(No)” 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보여줄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러한 의연한 행동이 나올 때 우리 과학기술자들은 진정으로 존경받는 집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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