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위축으로 벤처업계에 자금난이 지속되는 가운데 일부 벤처투자업체들이 당초에 협의됐던 고배수투자에 대한 약속을 뒤집고 벤처기업에 불리한 투자조건을 제시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 벤처업계의 시름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들 벤처투자업체는 불안정한 시장상황과 기업가치절하를 이유로 들고 있지만, 이들과의 투자협의에 맞춰 비즈니스프로세스를 준비해온 벤처기업이 기업경영에 적지 않은 차질을 빚는 경우가 늘고 있다.
실제로 정보통신장비 전문업체인 A업체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유명 벤처투자기업인 S사와 6개월 가까이 투자유치와 관련해 협의를 해왔으나 최근 투자기업측에서 당초 협의됐던 30배수의 투자조건을 4배수로까지 낮춰 제시, 투자유치 포기를 검토하고 있다.
벤처투자캐피털들이 서로 공조현상을 보여 담합의혹이 제기되는 경우도 있다. 정보통신부품 전문문 벤처기업인 Y업체. 탄탄한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해외에서도 그 실력을 인정받으며 시장을 주도해 가고 있는 이 회사는 지난 3개월간 투자를 협의해 오던 4개 벤처캐피털들이 당초 15배수로 투자하기로 구두약속을 해오다 최근 10배수에 이어 똑같이 4배수의 투자조건을 제시함에 따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이 회사는 투자유치를 포기하고 미국 등 해외에서의 투자유치를 위해 로드쇼 참가를 준비하고 있다. 이와 함께 단기수익 창출이 가능한 아이템의 영업활동에 주력하는 등 올해 사업계획을 보수적으로 수정했다.
이러한 벤처투자기업의 투자행태를 피하기 위해 아예 펀딩준비단계부터 외자유치만을 추진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최근 일본 종합상사로부터 투자유치에 성공한 어느 인터넷솔루션 개발업체의 벤처CEO는 “기업의 가치가 고정된 것은 아니지만 시기에 따라 임의로 투자방식을 변경하려는 투자업체들 때문에 기술개발과 제품출시의 적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면서 “외자유치가 쉽지는 않지만 초기부터 꾸준히 노력을 경주해 펀딩에 성공함으로써 계획된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벤처투자업계 일각에서는 “기업의 가치는 시장상황과 미래가치를 포함한 자체 평가과정을 통해 결정되는 만큼, 벤처기업이 과거의 시장가치를 현상황에까지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자금유치여부에 따라 기업의 경영활동이 좌지우지되는 벤처기업들이 갑작스런 투자기업의 고압적 자세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투자조건을 수용하거나 포기해야 하는 상황은 궁극적으로 양쪽 모두에게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대해 벤처업계 전문가들은 “투자유치는 기술력과 미래가치를 생명으로 하는 벤처기업의 특성상, 향후 사업전개방향을 결정하게 된다”면서 “성장잠재력이 높은 벤처기업들이 조기에 사장되지 않도록 투자자와 기업이 합리적인 기업평가에 나서 상호 윈윈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정환기자 victo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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