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덕환 한국컴퓨터게임산업중앙회 회장
현재 아케이드(오락실)게임시장과 컴퓨터게임장은 사상최악의 불황을 맞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아케이드게임산업이 하강곡선을 긋고 있으며 국내업체들이 시장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아케이드게임에 대한 심의제도가 잘못 운영되고 있는 것도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의 사용불가 판정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해 관련 산업과 시장을 왜곡시키고 있다. 현행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이하 음비게법)에는 사행성이 지나쳐 등급을 부여할 수 없다고 인정되는 게임물에 대해서는 영등위에서 사용불가판정을 내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영등위에서는 △슬롯머신·로열카지노 등 사행심을 유발할 우려가 있는 게임이나 그 내용을 묘사한 게임물 △오락성은 거의 없고 주로 도박에만 이용될 우려가 있는 릴식·띠식·짝맞추기식 등의 게임물을 사용불가게임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가 볼 때 영등위의 ‘사용불가’기준은 적어도 두가지 면에서 잘못됐다. 우선은 사행심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고 해서 또는 도박에 이용될 개연성이 있다고 해서 사용불가결정을 내리는 것은 잘못됐다. 인간의 경쟁심리에 바탕을 둔 오락게임은 어떤 의미에서 조금은 사행성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을 바꾸면 어떠한 게임으로든 도박을 할 수 있는 개연성은 있다는 것이다. 사행성을 막으려 한다면 사행 행위 자체를 금지하고 단속해야지, 단지 우려된다는 개연성만을 갖고 제품을 만들지 못하게 한다면 화투나 윷놀이 같은 오락기구도 유통을 금지해야 할 것이다.
또 한가지, 사행성이 지나치다는 기준과 사행심을 유발하거나 오락성은 거의 없고 주로 도박에만 이용될 우려가 있다는 판단의 기준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영등위는 게임물의 인터페이스만을 사행성의 근거로 삼고 있다. 물론 가장 손쉬운 잣대다. 하지만 게임물의 모양이 띠·릴·짝맞추기식으로 돼 있다고 해서 모두 사행성 게임이고 그 나머지 게임은 사행성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일반인의 상식으로 볼 때 어느정도 설득력을 가질지 모르겠다.
소위 ‘재심의 게임’은 영등위가 사행성 게임에 대한 심의기준을 강화하면서 생겨난 문제다. 과거 게임심의의 주무부처가 보건복지부일 때 아케이드게임물은 한컴산이나 공집협에서 합격과 불합격만을 판정했다. 이때 릴식·띠식 등과 같은 게임물이 합격판정을 받고 전국의 컴퓨터게임장에서 수년간 사용됐다. 어느날 갑자기 보건복지부에서 문화관광부로 바뀌면서 이들 게임은 영등위의 기준에 따라 ‘사용불가’처분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문화부는 수천억원대에 이르는 이들 게임기를 단번에 불법으로 판정해 폐기처분토록 하는 명령을 내리는 것이 부담이 돼 몇년간 유예기간을 뒀다. 문화부는 공중위생법에 근거해 심의를 받은 게임기가 3000여종에 이르며 이를 현재의 영등위 기준에 따라 재분류한다는 방침이다. 결과를 예단하기는 힘들지만 현재 영등위의 심의기준을 적용한다면 상당수의 게임이 ‘사용불가’등급을 받을 확률이 높다. 수천억원대의 게임기가 폐기처분돼야 하고 전국 2만여 컴퓨터게임장들은 앉아서 재산손실을 감수하거나 법을 어기고 영업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다. 종전 공중위생법에 근거, 합격판정을 받아 적법하게 사용돼온 게임기가 법률이 바뀌었기 때문에 폐기돼야 한다면 과연 어느 누가 그 처분에 순응하겠는가.
게임은 게임다워야 한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게임을 즐길 것이다. 그런데 게임이 사전검열에 의해 특정한 인터페이스를 닮으면 안되고 게임의 재미를 위한 사소한 기능(예컨대 더블기능)을 추가해서는 안된다고 하면 제작사들은 과연 어떤 게임을 만들어야 할지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다. 또한 네트워크기능·크레디트·베팅기능 등 다른 종류의 게임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 기능들이 유독 아케이드게임에서만 안된다면 과연 경쟁력을 갖는 아케이드게임이 나올 수 있을지 묻고 싶다. 게임다움을 자꾸 제약하면 다양한 놀이문화에 익숙해져 있고 눈높이 또한 높아져 있는 현대인들이 외면하는 것은 당연하다.
결론을 말하면 사행성 여부를 게임진행의 특성으로 판단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사실 그 효과도 담보되지 않는다. 사행성과 도박은 게임물의 심의단계에서 차단할 것이 아니라 그 게임물을 갖고 도박행위나 사행행위를 조장하는 행위자를 처벌하는 쪽이 훨씬 효과적이다. 예컨대 게임의 결과로 아무리 많은 점수를 획득했다 할지라도 획득한 점수를 현금이나 유가증권의 형태로 환불하지 못하도록 강력하게 규제하면 된다. 또한 게임결과에 따른 경품지급도 문화부에서 정한 경품취급기준의 범위에서 이뤄지도록 사후관리를 철저히 하면 될 것이다. 지금의 아케
이드게임심의는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우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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