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근의 정보통신 문화산책>(1)홍익인간(弘益人間)과 정보통신

세상에 단 하나의 전화만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

없다. 전화를 비롯한 정보통신 매체는 여럿이 함께 갖고 있어야 가치가 있다. 아무리 강력한 초고속 정보통신망이 깔려 있다고 해도 여럿이 함께 공유하지 않으면 효용가치가 없다. 나와 함께 남들도 갖고 있어야 하며 남이 많이 갖고 있을수록 내게 더 많이 이로운 것이 전화를 비롯한 정보통신 매체의 특성이다.

이런 정보통신 매체의 특징은 새로운 세상의 도래라고 일컬어지는 인터넷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유사 이래 그 어떤 자연현상과 종교, 어떤 무력보다도 강하게 인류를 하나로 묶어 놓은 인터넷의 공간에는 개인·기업·단체·국가의 홈페이지와 각종 사이트가 만들어져 있고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그런 사이트들은 만드는 자신들보다 남을 위한 배려가 더 크다. 물론 어떤 형태로든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는 명제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 해 자신도 이로움을 얻고자 하는 특징을 가졌다.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통신 매체가 갖는 이런 특성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사상적 뿌리가 되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사상과 그 축을 같이한다. 널리 인간 세계를 이롭게 하는, 전체를 이롭게 하는 것이 곧 나를 이롭게 하는 우리 민족의 5000년 유구한 역사를 지탱해온 홍익인간 사상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홍익인간 사상은 국조(國祖) 단군(檀君)의 건국이념이며 고조선 개국 이래 한국 정교(政敎)의 최고 이념이다. 우리나라의 교육법에 나타나 있는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완성하고 자주적 생활 능력과 공민으로서의 자질을 구유(具有)하게 하여 민주국가 발전에 봉사하며 인류 공영의 이상 실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1949년 제정 교육법 제1조)’는 내용에서도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홍익인간과 단군사화(檀君史話)에 대한 내용은 일연(一然)의 ‘삼국유사(三國遺事) 기이편(紀異編)’ 고조선 조(條)에 기록돼 있다. 그 내용에 대한 해석의 다양함과 역사냐, 신화냐에 대한 논란에 상관없이 홍익인간 사상이 우리 민족 5000년 역사를 지탱해온 축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반만년 동안 우리 민족이 수난을 당하고 위기에 처할 때마다 단합할 수 있는 구심체 역할을 해온 홍익인간 사상은 단일민족의 긍지와 애국·애족하는 충성심, 조상에 대한 공경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이었기 때문에 그 위력이 범상치 않은 것이다.

‘25시’의 저자 게오르규는 86년 4월 프랑스의 한 잡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발표했다. “한국의 홍익인간 사상은 최대 행복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모든 인간의 최대 행복을 뜻하는 이상이며, 물질과 정신을 포괄한 초월적인 이념이다. 홍익인간이라는 단군의 통치이념은 지구상에서 가장 완벽한 법률이며, 가장 강력한 법이다.” 게오르규는 또한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이 낳은 홍익인간 이념이 21세기 태평양시대의 세계를 주도할 것이다”라고 역설했다.

사상적 뿌리와 체계, 그 가치가 확인된 홍익인간 사상과 현대사회의 축이 되고 있는 정보통신 매체가 갖는 특징의 동질성은 전화의 탄생 과정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전화를 발명한 벨은 말을 듣지 못하는 농아들에게 소리를 듣게 하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다. 남을 이롭게 하기 위한 마음으로 발명이 시작된 것으로 비록 농아들에게 소리를 듣게 하진 못했지만 지금도 널리 인간들을 이롭게 하는 매체로 활용되고 있으며 말 그대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인본주의(人本主義)가 바탕이 되는 홍익인간 사상과 그 축을 같이하고 있다.

또한 19세기 말 우리나라에 전화를 처음 소개한 책자인 ‘이언(易言)’이라는 책자를 통해서도 홍익인간 사상과의 동질성을 찾을 수 있다. ‘이언’에서는 전화를 유리무해(有利無害)한 매체로 설명하고, 사용하는 사람들도 이로울 뿐만 아니라 국가에도 끊임없이 수입이 생기는 이로운 매체로 각 국이 다퉈 설치중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익이 상반되는 다른 매체와는 다르게 이로움만 있고 해로움이 없는 매체로 소개된 점도 홍익인간 사상과 그 궤를 같이한다.

정보통신 매체의 활용에 대한 윤리적 측면에서도 홍익인간 사상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홍익인간은 진정한 사랑과 자비의 경지를 이르는 사상이다. 내 이웃, 내 친척, 내 민족만을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널리 모든 인간을 사랑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체를 위한 것이 곧 나를 위한 것’이라는 기본 인식은 자살 사이트, 음란물 사이트, 비정상적인 상거래, 채팅을 통한 원조교제 등 정보통신 매체를 통해 일어날 수 있는 비윤리적 행위를 계도할 수 있는 사상으로 부각되고 있다. 정보통신 매체가 갖는 익명성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대응과 방지를 위한 윤리적 대안으로 내세울 수 있는 사상인 것이다.

그렇다면 홍익인간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우리 민족의 특질은 정보통신 분야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그것은 현재 우리나라의 정보통신 매체 활용 수준을 살펴보면 바로 확인할 수 있다.

현재 고속인터넷에 가입돼 있는 우리나라 가입자는 400만명(100명당 8.5명)을 넘어섰다. 일본은 46만명이 가입(100명당 0.4명)돼 있으며, 미국은 281만명이 가입(100명당 1명)돼 있다. 이 수치만 본다면 우리 민족의 정보통신 매체 활용 욕구는 가히 폭발적이다. 뿐만 아니라 유선전화사업과 휴대폰사업에서도 기네스북에 게재될 만큼 폭발적인 발전을 이룩했다. 특히 초고속 인터넷의 경우 한 회선으로 전화와 PC, 주변장치 여러 개를 함께 사용할 수 있고 상시접속이 가능하다는 기능성까지 생각한다면 더 예사롭지 않은 현상이 된다.

또한 일반인들은 인식하지 못할지라도 이미 세계적인 정보통신사업자들은 우리나라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손잡지 않으면, 우리를 활용하지 않으면 세계적인 사업으로 확대시키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제 정보통신 분야에서는 우리가 세계 기준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외국 통신사업자의 숙주 역할을 한 부분도 있고, 통계적 수치가 정보통신의 기술 수준을 나타내는 직접적인 척도가 될 수 없을지라도 그 폭발력은 분명히 주목해야 할 현상이다.

2001년 2월 9일, 전국의 통화권을 광케이블로 잇는 초고속 정보통신 기간망 구축이 완성된 것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이에 따라 읍·면 단위에 이르는 144지역이 거미줄처럼 이어져 전국이 1초 생활권으로 묶이게 되었다. 이 통신망을 통해 한국통신은 전국 1만여개 초중고교에 초고속인터넷서비스 개통을 완료했다. 왜 학교였나. 왜 가장 먼저 학교에 초고속망을 사용할 수 있게 했을까. 홍익인간 이념의 완성을 목표로 하는 학교에 초고속 통신망이 먼저 활용되었다는 점에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정보통신과 인터넷이 중심이 되는 사회.

분명 새로운 세상이다. 지금까지의 세상과는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의 세상이며 그 패러다임은 기존 틀을 무너뜨릴 힘과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아놀드 토인비와 앨빈 토플러, 노스트라다무스와 에드거 케이시 등 석학과 예언자들이 이야기한 세계가 하나로 되는 세상, 하나의 중심부를 형성해서 세계가 돌아가는 새로운 세상은 바로 인터넷과 정보통신이 주도하는 지금부터의 세상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일관되게 이야기하고 있는, 새로운 세상을 이끌 빛이 온다는 동방은 어디인가.

‘내가 빛이 온다고 말한 그 동방은 여러분들의 작은 나라, 한국에 잘 적용되는 말입니다. … 내일의 빛이 당신의 나라인 한국에서 비쳐온다 해서 놀랄 것은 조금도 없습니다.’ 게오르규의 말이다.

게오르규가 말한 내일이 지금부터의 세상이라고 한다면, 지금부터 열리는 새로운 세상을 이끌어갈 빛은 한반도, 우리 한민족이 밝히게 된다. 5000년 전 핵무기의 개발과 맞먹을 정도의 위력을 지닌 황금빛 청동의 발명과 사용을 통해 동북아시아를 주름잡으며 홍익인간 사상을 전했던 우리민족이 그 빛을 밝히게 되는 것이다.

새롭게 열리는 세상에서 우리 민족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게 된다면 어느 한 순간 전환점으로서의 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 계기는 어떤 것이 될 것인가. 바로 정보통신과 인터넷이다. 어느 분야보다도 홍익인간 사상과 맞아떨어지는 인터넷과 정보통신 사업이 우리민족 도약의 뇌관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지라도 폭발은 이미 시작되었고, 그 폭발은 홍익인간 사상을 통해 동북아시아를 지배했던 우리민족의 자신감을 회복하게 하는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며, 그 에너지는 이미 5000년 전부터 계시되고 잠재돼 있던 우리 민족의 힘이다.

홍익인간 사상과 맥을 같이하는 정보통신과 인터넷을 바탕으로 우리가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해보자.

이제, 우리가 세상을 조율(調律)하여 보자.

작가 김영근/한국통신문화재단 생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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