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엣 포 원(Duet for One)」
국내 전자정보산업계에 다른 음색을 지닌 두명의 전문경영인이 화합해 연주하는 공동경영의 바람이 분다.
공동경영은 위기 극복을 위한 구원투수 영입이라기보다는 전력 강화를 위해 기량이 뛰어난 골잡이를 추가하는 「투톱」시스템에 가깝다.
공동경영은 처음에 일부 대기업에서 먼저 시작됐으나 오히려 중소 벤처기업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대기업의 부문별 대표들은 여전히 오너 경영자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반면 중소 벤처기업들은 자율성을 기반으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 현황 =공동경영 체제를 도입한 중소 벤처기업들은 줄잡아 30여개에 이른다. 인성디지탈(원종윤·김경섭), 예스컴(이용석·조종식), 에이폴스(김윤호·김창구) 등 인터넷 벤처기업들이 많으며 최근에는 제조업체로 확산됐다. 인쇄회로기판(PCB) 전문업체인 오리엔텍(백낙훈·김정만), 클린룸업체인 신성이엔지(이완근·김주언), 공기압 제어기업체 삼한콘트롤스(심윤관·김춘호) 등 10여개사가 최근 공동경영제를 도입했다. 대기업 계열사나 벤처캐피털로도 확산되고 있다. 현대정보기술은 지난달 말 현 석민수 대표가 연구 및 개발업무와 기술전략 수립 등을 담당하고 신임 김선배 대표는 영업 및 기획을 비롯한 회사의 전반적인 대외업무를 총괄하는 각자대표 체제로 바꿨다. 투자회사인 인터베스트는 현 이태용 대표가 관리를, 정성인 대표는 투자를 맡는 공동경영제를 도입했다.
공동경영은 경영자가 합심해 모든 의사결정을 내리는 공동대표제와 전문 분야별로 역할을 뚜렷이 구분한 각자대표제로 나눌 수 있다. 공동경영을 도입한 기업들은 두가지 가운데 자사에 적합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 도입배경 =공동경영의 확산은 갈수록 불확실해지는 경영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혼자 내리기보다는 서로 협의해 닥쳐올 위험을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특히 엔지니어가 창업한 벤처기업들은 한단계 도약을 위해 공동대표제를 활용한다. 재무나 관리·영업 등의 전문가들 영입해 회사경영을 맡기고 창업자는 연구개발에 집중하는 식이다.
DVR업체인 3R 장성익 사장은 재무담당인 박정서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켜 영업·재무·회계·대외업무 등 경영전반을 맡기고 자신은 연구개발에 전념하고 있다.
신규사업 진출과 인수·합병(M&A)도 공동경영의 도입을 부채질하고 있다.
공기압 제어기 개발업체인 삼한콘트롤스의 심윤관 사장이 스마트카드 사업에 진출할 목적으로 최근 김춘호 사장을 영입, 각자 대표제에 시동을 걸었다. 전자부품업체 지이티의 박종희 사장은 지난해 말 자동차 코일 생산업체인 P&K를 합병하며 박종환 P&K 사장을 각자 대표로 선임, 사업성격이 다른 2개 사업을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 아직은 실험중 =공동경영제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으나 일단 긍정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업계는 충분한 사전준비작업 없이 자금력만으로 사업을 확장할 경우 기업이 부실해질 수 있으나 준비된 전문경영자를 영입할 경우 사업의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 벤처투자사 관계자는 『우리가 투자한 회사 가운데 기술이 우수하나 경영과 마케팅에는 문외한인 사장이 많아 전문가 영입을 권유한다』면서 『사장도 대체로 환영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공동경영은 독단적인 오너 경영의 폐단을 없앨 수 있다. 특히 각자대표제는 독립적인 의사결정은 물론 전문성까지 확보해 선진적인 경영구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반론도 만만찮다. 공동경영이 조직이 비대하고 다양한 사업분야를 거느린 대기업에는 적합하지만 직원이 100명도 안되는 기업에서 경영자가 둘이나 있을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또 엄연히 이사회라는 조직이 있는데 공동경영이 이뤄진다면 그만큼 독립기구인 이사들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반증이라는 지적도 있다.
경영권을 둘러싼 갈등으로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인터넷 기업인 골드뱅크나 인티즌은 공동대표제를 도입했다가 경영자간의 이견으로 단독경영으로 되돌아갔다.
공동경영이 성공하려면 경영자간의 긴밀한 협의나 신뢰관계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다.
아직은 실험단계이나 공동경영은 앞으로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특히 그룹 해체로 독자 경영에 대한 부담이 커진 대기업 계열사로도 번져갈 것으로 예상된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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