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컴서 기술료 분배금 받은 ETRI

국내 출연연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미국 퀄컴사로부터 국제분쟁을 통해 기술료 분배금 1억달러를 챙긴 것은 분쟁의 승패를 떠나 한국이 앞으로 어떻게 과학기술의 분야를 선택하고 연구해 나갈 것인가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이번 분쟁은 주변의 연구원이나 법률가 등 전문가 대부분이 퀄컴을 상대로 한 분쟁에서 질 것이 뻔한데 괜히 나서서 망신당하지 말고 다음부터 잘하면 될 것 아니냐는 조언이 지배적이었던 힘든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분쟁에서 패하면 소송비용 전체를 연구기관이 책임지라는 냉소적인 분위기가 주류였다.

그러나 이에 맞서 자신의 자리보전에 연연하지 않고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의 심정으로 지리한 국제중재에 나섰던 정선종 ETRI 원장의 용기있는 결단과 수장을 믿고 끝까지 따라줬던 직원들, 미국 현지의 증언대에 기꺼이 올랐던 ETRI출신 연구원들의 열성이 있었기에 의미가 더욱 값지다.

◇국제 분쟁 대응 경험 = ETRI의 이번 성과는 특히 최근 들어 정보통신분야의 국제 협력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해외연구기관 및 업체와의 공동연구개발을 추진할 경우 기술적·법률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노하우를 얻은 귀중한 경험이다.

ETRI와 퀄컴간 계약은 처음부터 허술했던 것이 사실이다. 퀄컴과 기술공동개발 계약 당시인 92년도만 해도 국제계약과 관련한 경험을 가진 법률가나 전문가가 국내엔 전무한 실정이어서 허술한 계약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경험은 분명 국내 연구진에게 국제화의 또다른 대응전략을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국내에는 아직까지 국제분쟁을 통해 얻은 뼈아픈 체험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할 국제소송 관련 전문가를 양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TRI가 지난 15일 퀄컴으로부터 입금받은 1억25만5530달러(약 1289억원)라는 거액은 제품이 아니라 연구개발에 대한 지식기반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어서 의미가 더 크다. 연구기관에 원천기술을 개발하라고 주문하기보다는 단기적으로 돈되는 봇따리 연구만을 강요해온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이 나아가야 할 좌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정책입안자들에 경종을 울려줄 만하다.

ETRI의 CDMA 성공은 현재 추정되는 매출액이 96∼99년 상반기 동안 삼성전자, LG정보통신, 현대전자산업, 맥슨전자 등 국내 지정생산업체만 10조원대에 이르고 생산유발효과는 21조3000억대, 고용창출효과가 26만명, 수입대체 효과가 13조1000억원대를 바라볼 만큼 국내 경제에 크게 기여했다.

◇환수액 분배는 = 이제 남은 문제는 ETRI가 챙긴 기술료 분배금의 적절한 활용이다. 그간 기술료 배분금을 둘러싸고 사업을 요청했던 정보통신부와 자금을 출연했던 한국통신 및 SKT 등이 일정지분을 요구하고 있어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정보통신 연구개발 관리 규정에 따르면 정통부 출연연구사업의 경우 기술료 수입이 발생할 때는 연구개발기관과 정통부가 50 대 50으로 분배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번 경우처럼 기술료 배분금은 기술료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 ETRI의 주장이다. ETRI는 91년 연구개발을 시작할 때 당시 정통부의 과제로 전기통신기본법에 따라 한국통신과 SKT 등으로부터 900억원이 넘는 예산을 지원받아 퀄컴과 CDMA의 공동연구개발에 성공한 것은 사실이나 96∼97년까지 받은 기술료 배분금을 지급하지 않았었다.

이에 대해 정통부 및 관련업계는 『정통부 사업으로 이루어진 결과물이기 때문에 규정대로 정부에 일정부분을 귀속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강력하게 펴고 있어 양자간의 논란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ETRI는 이번 재원을 원천기술이나 기초기반 기술 개발 등에 재투자해야 제2의 CDMA같은 기술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특히 차세대 정보통신 기술 개발 및 지적재산권 확보를 위한 비용 등으로 전액 재투자되기를 ETRI는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러나 ETRI는 정통부의 예산을 가져다 쓰는 입장에서 정부의 입지 또한 무시할 수 없기에 서로간의 절충점을 찾기 위한 방안을 모색중이다.

<대전=박희범 기자 hb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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