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중소부품업체의 설움

중소부품업체들의 고객들인 몇몇 대기업은 이른바 부품현지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들 대기업들은 해외시장 공략 및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해 운영중인 해외공장에서 필요한 부품을 현지에서 직접 조달함으로써 물류비용과 납기를 개선시키겠다는 의도다.

자체로서는 의미있는 시도다. 하지만 이에 대한 중소부품업체들의 고민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기업들의 정책에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쫓아서 해외공장을 건설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부품업체들도 가격경쟁력 강화차원에서 해외공장을 자체 운영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자사의 경쟁력 향상을 위한 투자 외에 오직 대기업의 부품현지화 정책에 발맞추기 위한 해외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A업체는 인도에 부품공장을 건설해 운영하고 있다. 인도에 진출한 국내 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하는 것이 중소업체 공장의 유일한 목적이다.

A업체의 한 담당자는 『해당 기업이 언제 철수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투자하는 것은 부담이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B업체도 멕시코에 창고를 운영하고 있다. 현지에 있는 대기업 공장이 부품 재고를 회피하는 바람에 직접 창고를 운영하는 것이다. B기업이 운영하고 있는 창고는 자사의 생산 및 직수출과 무관하게 단지 대기업의 위험을 부담하는 차원에서 존재한다.

이렇다보니 부품업체들은 아직도 세트업체들의 부품조달 방침에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불만이 생길 수도 있고 위험이 커질 수 있지만 세트업체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중소부품업체들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당장 대기업과 거래가 끊길 수 있기 때문이다.

중소부품업체의 사장은 『독자 마케팅력을 갖추지 못한 부품업체의 비애』라면서 『대기업이 철수하면 중소부품업체는 고스란히 부실만을 떠안게 된다』고 지적한다.

많은 지원책을 발표하고 부품업체들을 지원하고 있는 정부는 정작 부품업체의 마케팅을 육성하는 데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부품업체들이 해외에서도 독자생존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데 정부의 지원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부품업체의 일로 맡겨두기에는 너무 버겁기 때문이다. 이제 부품업체들이 세트업체와 공동으로 해외진출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볼 때가 아닌가 싶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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