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은 살아있다>(1)프런티어기업

「뉴 프런티어는 우리가 구하든, 구하지 않든 상관없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 프런티어의 이면에는 아직 지도상에 표시조차 돼 있지 않은 과학이라든가 우주의 분야, 아직 해결하지 못한 전쟁과 평화의 문제, 아직 정복하지 못한 무지와 편견의 문제들이 수두룩하게 놓여 있다. 나는 여러분이 이 새로운 프런티어의 신 개척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뉴 프런티어론은 척박한 환경에서 21세기를 준비하고 있는 우리 제조업체들의 마음가짐을 닮았다. 세상은 온통 정보통신과 인터넷, 서비스업에 마음을 쏟고 도무지 제조업에는 관심이 없다.

더욱이 제조업을 기반으로 새로운 기회를 찾는 신생기업들의 어려움은 제조업을 국가정책사업으로 밀던 과거에 기반을 닦아 놓은 업체들이 느끼는 그것과 무게 자체가 다르다.

굴뚝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안고 출발해야 하는 제조업 기반의 신생기업들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시간과 정력 그리고 자본을 쪼개왔다. 특히 닷컴 벤처 붐이 불던 지난 3∼4년 간은 마치 「첩의 자식」 취급을 받는 자신들의 처지에 한숨을 짓기도 했다.

닷컴 벤처에 대한 열풍이 한차례 지나가고 최근에야 비로소 기술력을 바탕으로 하는 제조 기반의 벤처 및 신생업체에 세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들 제조업분야 신생업체들은 반도체면 반도체, 부품이면 부품, 가전이면 가전 등 각 분야에서 첨단 기술트렌드를 만들어내고 획기적인 생산성 향상과 고유 업종의 고부가가치화를 주도하고 있다.

프런티어기업으로 명명되는 이들 제조업분야 첨단업체는 기술적 한계에 도전하고 현재 존재하지 않는 가치를 끊임없이 찾아 헤매면서 굴뚝기업이라는 세간의 평가를 무색하게 한다.

물론 제조업 프런티어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고 있는 신주류 산업과의 공생도 항상 시야에 두고 움직인다. 인간의 생활 방식까지 뒤바꾸고 있는 현재의 정보기술혁신을 무시하고서는 어떤 발전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점차 심도있게 논의되고 있는 오프라인 기반의 온라인 사업이라는 말도 왠지 가슴을 설레게 한다. 실제로 제조업의 한계를 극복하는 열쇠를 신주류 산업의 흐름 속에서 찾아내기도 한다.

세계 산업의 조류가 지식화·정보화로 특징지어지는 산업의 지식기반화, 경제적인 국경이 사라지는 글로벌화로 진행되면서 우리 프런티어 기업들의 사업기회는 한층 넓어지고 제조업 기반의 하이테크 산업 성장성에 장밋빛이 드리우고 있다.

이 때문에 프런티어 정신으로 무장한 신생기업들은 이제 기술력 하나로 세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의욕을 갖고 제조업분야의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우리 경제는 지난 30년 간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중화학공업 주도의 고도성장을 구가해 왔고 이러한 고도성장의 추진력을 대량 생산기술을 바탕으로 한 가격경쟁력 우위에서 찾아왔다. 그러나 국내 산업의 가격경쟁력은 임금상승과 경쟁국의 추격으로 인해 크게 약화돼 기술개발이 아닌 가격 경쟁력만으로는 세계시장에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특히 대기업 중심의 성장드라이브는 중소기업 규모의 제조업체를 대기업의 하청업체 수준으로 끌어내려 대기업들이 헛기침만 해도 몸살을 앓는 허약 체질로 만들어 놓았다.

고도의 기술과 정보가 지배하는 향후 세계경제는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기술혁신과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기술력 기반의 소규모업체들이 주도할 것이 분명하다.

이제는 기술력 기반의 전문기업, 연구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갖는 신생기업들에 주목할 때다. 각 분야에서 세계 최첨단 기술과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들 업체는 21세기 우리 경제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전통적인 제조업체와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신생 프런티어업체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연구개발 인력의 규모다. 프런티어업체들은 기술개발에 인적·물적 자원을 최대한 투자한다. 또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흡수해 첨단기술의 재창출을 시도한다.

양산체제를 갖춰 놓고 생산원가를 절감해 이익을 창출하는 기존 제조업체의 성향과 확연히 구별된다. 또 불투명한 미래가치에 의존하지 않는다. 발은 현재의 기술력에 두고 머리는 새로움을 추구하기 때문에 거품에 쉽게 휩싸이지 않는다.

제조기반 프런티어업체들이 집중돼 있는 업종은 전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반도체관련 분야다. 특히 ASIC과 특수반도체 등 비메모리 분야에는 기술력으로 무장한 신생업체들이 대거 뛰어들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올해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 업체들은 매출목표를 크게 올려 잡고 투자 및 인력 규모를 늘리고 있으며 해외 진출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정밀도가 생명인 반도체장비 분야에서도 전문업체들의 활약은 두드러진다. 특히 300밀리웨이퍼 시대를 대비해 발빠르게 움직여 관련 장비의 국산화에 성공, 세계 주요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대만 등에 현지법인을 잇따라 설립하면서 세계시장 공략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

부품업계에도 프런티어기업들이 첨단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부품을 내놓으면서 업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특히 경박단소화와 내구성이 생명인 첨단 부품들을 계속 업그레이드, 생산하면서 세계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가전업계 프런티어기업들은 아날로그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MP3업체들과 MP3플레이어를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응용상품을 내놓고 있는 전문업체들, 새로운 콘셉트의 디지털 녹음기 및 라디오를 출시하는 벤처기업 등은 대기업들의 전유물이던 가전시장에서 디지털 콘셉트를 바탕으로 선전하고 있다. 특히 일부 벤처기업은 대기업들이 관심을 갖고 추진하고 있는 양방향 디지털 멀티미디어 관련기기 등을 세계 주요기업들보다 한 발 앞서 상용화해 업계를 선도하고 있다.

또 첨단산업인 정보통신과 컴퓨터분야에서도 제조기반 신생기업들이 네트워크관련 장비 및 솔루션을 지속적으로 개발하면서 정보통신 인프라 형성의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새로운 시도는 그 무리에서 각광을 받기도 하고 배척을 당하기도 한다. 닷컴 벤처들이 범정부 차원의 지원 속에 21세기 전면으로 부상했다면 제조기반 프런티어업체들은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21세기를 향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제조업은 국가경제의 원동력이다. 그리고 제조기반의 신생업체인 프런티어기업들은 제조업 성장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프런티어기업은 말 그대로 개척자 정신을 필요로 한다. 끊임없이 개발과 실패를 거듭해야만이 세계시장에 떳떳하게 내놓을 수 있는 진품을 출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첨단 산업의 인프라 조성을 음지에서 지원하는 이들 프런티어기업에 대한 정부 차원의 구조적인 지원이 필요할 때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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