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디자인 선진국의 길 멀지 않다

◆정경원-한국산업디자인진흥원장

「21세기는 디자인의 세기」라고 하는데 과연 우리의 디자인 수준은 어떠한가. 지난해 영미 합작 디자인컨설팅회사인 IDEO사가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일본·싱가포르·한국·대만 등 9개국을 대상으로 11개 디자인 분야에 대해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는 제품·공학·운송 등의 분야는 7위, 패션과 섬유는 최하위, 기타는 8위를 차지해 종합순위 8위로 발표됐다.

물론 매우 복합적인 요소로 구성되는 디자인 수준의 평가에 대해 크게 신뢰하지 않는 사람도 다소 있을 수 있다. 실제 전자산업을 비롯해 국내 대표적인 기업들의 디자인력은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평가는 대체적으로 우리의 경제 현실을 반영한다고 보기 때문에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IDEO사의 평가에서 상위를 차지한 디자인 선진국들의 상황을 보자. 미국은 클린턴 행정부에서부터 「미국을 디자인하자」는 구호를 내걸고 디자인 지원을 강화하고 있으며, 미 「타임」지는 50년 만에 「디자인의 재탄생」을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디자인 붐을 고조시키고 있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쿨 브리타니아(멋있는 영국)라는 슬로건 아래 종래의 「생산공장」을 「디자인공장」으로 이미지를 바꾸는 데 앞장서고 있다. 종전의 「메이드 인 저머니」에서 「저먼 디자인」으로 타국의 디자인과 차별화시키고 있는 나라는 독일이다.

그러면 우리나라가 디자인 선진국을 향해 우선 할 일은 무엇일까. 먼저 디자인계는 물론 사회 각계 각층에서 일반 대중의 디자인 마인드를 높이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디자인 선진국들을 보면 대중의 수준 높은 안목이 그 나라의 디자인 수준을 리드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자인 한국, 한국을 디자인하자」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또한 우리 디자인의 세계화에도 주목해야 한다. 지난해의 「세계그래픽디자인대회」에 이어 오는 10월 「디자인올림픽」으로 불리는 「세계산업디자인대회」를 개최하게 된 것도 그런 취지다. 이런 대회를 성공시킴으로써 우리의 디자인 위상과 국가 이미지를 높이고, 일반인의 디자인 마인드도 한 단계 더 성숙시키자는 것이다.

그리고 기업이 디자인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활용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디자인을 기업의 최우선 전략으로 채택하는 「디자인 경영」을 도입해야 한다. 「디자인 경영」이란 제품의 기획단계에서부터 개발·판매·마케팅까지 상품개발의 전단계를 디자인이 주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 디자인은 최고경영자의 책임이라는 말을 한다. 고도로 창의적인 작업인 디자인이 다른 여러 부문과 협력해 성공할 수 있기 위해서는 최고경영자의 결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디자인 교육도 강화해야 한다. 우수한 디자인은 우수한 디자이너에서 비롯되므로 새 시대에 맞는 전문 디자인 교육이 필요하다. 특히 산업환경의 변화에 따라 웹·애니메이션·캐릭터·게임 등 새로운 멀티미디어 분야가 속속 등장하고 있어 디지털 디자인 부문을 핵심역량으로 키워 나가야 한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정보인프라 수준을 자랑하며 디자인 인력 또한 풍부하다. 그리고 디자인 인프라로서 디자인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코리아디자인센터」가 올해 완공된다. 디자인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사회적 관심도 제고돼, 지난해 말 경제여건이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디자인 벤처펀드 1호가 결성되고, 투자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여건을 감안하면 우리는 디자인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미 국내의 대표적인 가전업체들이 미국과 독일·일본 등에서 우수디자인상을 연속해서 수상하고 있는 것이나, 최근 우리나라에서 만든 휴대폰이 내로라하는 다국적기업들을 제치고 미국시장에서 판매실적 1위를 차지한 것 등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이러한 성공을 더욱 확산시키기 위한 각계 각층의 디자인 관심 제고와 디자인계의 노력만이 남았다. 금년을 「디자인의 해」로 선포하고 디자인 선진국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딛게 된 것은 의의가 크다. 이제 우리도 IDEO사의 평가에서 상위 그룹을 차지할 날이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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