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궁(鞠躬)」 「배(拜)」 「흥(興)」
김 상궁이 소리를 길게 내지르자 구령소리에 맞춰 나열해 선 중종의 후궁들과 트레머리를 한 100여명의 궁녀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인다. 마치 장군을 영접하러 나온 육군의 사열을 보는 듯하다.
드디어 궁녀들 사이로 붉고 화려한 대례복을 입고 대수를 쓴 문정왕후(전인화)가 위풍당당하게 걸어와 임금만이 사용하는 용상에 기품을 뽐내며 앉는다.
앞 뜰에는 족두리에다 화려하고 요란한 원삼과 활옷을 차려입은 후궁 경빈박씨(도지원)와 희빈홍씨(김민희), 그리고 창빈안씨(최정원)가 부러운듯 곁눈질하지만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한다.
최근 방송가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SBS TV 월화드라마 「여인천하(극본 유동윤, 연출 김재형)」의 한 장면이다.
방송사의 불꽃 튀는 사극 대전(大戰)을 겨냥해 SBS가 야심차게 내놓은 이 작품은 중종의 세 번째 왕비인 문정왕후가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명종을 대신해 정사를 돌보며 그의 오빠 윤형원(이덕화)의 첩 정난정(강수연)과 함께 권력의 정상에 올라 천하를 호령한다는 내용의 대하역사물.
월탄 박종화의 원작을 바탕으로 강수연·전인화·박주미·김정은 등 그야말로 화려한 여성출연자들과 이덕화·박상민 등 중견급 남자탤런트들이 사극의 대가 김재형 PD와 딱딱 호흡을 맞춰가며 안방극장의 파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25년 만에 브라운관에 나들이한 최고의 여배우 강수연(34)의 연기가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해 첫 방영을 시작한 지난 5일 이후 평균 시청률 30%대를 유지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고 있다는 게 SBS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여인천하」의 이같은 호조세가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경쟁사인 MBC가 대형사극 「홍국영(극본 임충, 연출 이재갑)」을 내달 5일부터 같은 시간대에 방영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허준」으로 인기 돌풍을 일으켰던 여세를 몰아 「MBC =사극」이라는 공식을 실현해보겠다는 전략이지만 실상은 맞불작전이다.
「홍국영」은 작가 유현종이 지난해 말 출간한 대하소설 「풍운」을 바탕으로 조선시대 영조말기 정조의 등극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궁궐 안팎의 암투를 배경으로 정조의 가신 홍국영(김상경)과 정후겸(정웅인)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몰락한 양반의 아들 홍국영은 노론벽파의 횡포 속에서 갖은 정적을 물리치고 권력의 중심부에 오르고 정후겸은 천민 출신으로 화완옹주의 양자로 들어가 영조의 총애를 받아 출세가도를 달리지만 홍국영의 저지로 죽음을 맞는 과정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여인천하」가 강수연을 내세운 여성들의 반란이라면 「홍국영」은 그야말로 선이 굵은 남성들의 거친 인생을 다룬 것이어서 사극의 주 시청층인 중장년 시청자의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으로 MBC측은 기대하고 있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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