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컴퓨터 조현정 사장이 최근 조선콤퓨터쎈터 초청으로 북한에 다녀왔다.
이번 방북에서 조 사장은 북한의 전자공업성상(남한의 산업자원부 장관 또는 정보통신부 장관급)과 조선콤퓨터쎈터 소장 및 조선프로그램협회 이사장 등과 만나 정보기술(IT)산업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인민대학습당에서 남한 사람으로는 최초로 500명의 북한 IT 인력을 놓고 강연회도 가졌다.
그래서 조 사장은 『이번 방북이 구체적인 업무 체결을 위한 것이 아닌 만큼 북한에 확실한 인맥과 창구를 구축하고 앞으로 많은 일들을 추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 것이 최고의 성과』라고 강조한다.
북한 측의 남다른 대접도 조 사장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방북을 하면 누구나 간다는 김일성 생가나 동상 방문을 강요받지 않았고 방문 첫날과 마지막날에 두 번씩이나 초대소에서 식사 대접도 받았다. 심지어 안내자 없이 어디든 방문해도 된다고 해서 호텔에서 평양역까지 안내자 없이 직접 걸어보기도 했다.
『대부분이 처음 북한을 방문하면 긴장하고 위축되는데 당신은 북한을 자주 방문한 사람처럼 자유스럽게 행동한다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실제로 조 사장은 북한에서 어느 누구를 만나더라도 위축되거나 거리낌끼지 않고 평소 주장을 솔직히 얘기했다. 그는 북한이 잘 살기 위해서는 산업화보다는 정보화를 앞당겨야 하고 과학과 정보통신이 차이가 있는 만큼 북한에도 한국 정부처럼 독립적인 정보통신부가 있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서울의 테헤란벨리, 중국의 중관춘, 미국의 실리콘베리 등 외국의 사례를 들면서 외국과 한국의 개발회사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역을 특별구역으로 지정해야 된다고 했으며 금강산이나 신의주, 그리고 나주의 특구는 벤처기업들이 접근하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했다.
그는 생산 규모, 수출액, 휴대폰 사용자수, 인터넷 사용자수, 도메인 등록수, PC 보급대수 등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가며 상상을 초월하는 한국의 IT경제 수준을 북한이 직접 느낄 수 있도록 설명했다. 이는 통일에 앞서 남북간 정보격차가 국내총생산(GDP)과 국민총생산(GNP)의 격차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는 조 사장의 평소 생각 때문에서 비롯한 것이다.
특히 키보드 및 컴퓨터 용어 통일 등 남북한간 표준화 문제도 심도 있게 논의한 대목이다.
『최근 한국 언론에 「북한이 조선어 리낙스를 개발했다」는 보도가 있었다고 얘기하며 왜 「리눅스」를 「리낙스」로 발음하냐고 물었더니 북한의 컴퓨터 교재 대부분이 일본에서 오다 보니 그렇게 읽게 됐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북한 측은 앞으로 많은 컴퓨터 교재 보급운동이 필요하다며 그 역할을 조 사장에게 직접 부탁했다. 만약 한국어 IT 교재가 북한에 많이 보급된다면 각종 컴퓨터 용어에 대한 통일은 자연히 이뤄질 것이라는 게 조 사장의 판단이다.
또 북한은 자체 기술자 5명 정도를 한국에 약 1년 동안 보내 교육시켜 이들이 한국의 프로젝트를 수주했을 때 프로젝트 매니저로 활약할 수 있도록 한국 정부에 의견을 물어 봐 달라고도 요구했다.
인민대학습당에서 가진 강연회도 조 사장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행사 중 하나였다.
『원래 강의 대상자가 60명으로 예정돼 있었으나 도착 직후 순안공항 가까운 곳의 초대소에서 저녁을 먹는 중에 본인과의 대화 내용을 경청하더니 500명으로 늘리라는 내부 방침이 결정됐습니다.』
북한 장관급 인사인 전자공업성상도 조 사장의 강연을 『공화국이 자랑하는 인민대학습당에서 남쪽 사람이 많은 인민들 앞에서 강의한 것은 공화국 역사상 최초의 일』이라고 표현하며 김정일 위원장에게도 보고했다고 말했다.
북한 강연에서 조 사장은 비트컴퓨터의 창업 과정 및 현황과 한국이 IT에 집중함으로써 얻은 경제적 성과를 통계로 설명했다. 특히 벤처혁명이 한국사회를 바꿔놓은 내용과 함께 새로운 CreBiz(Creative Business)가 제4의 혁명을 몰고 올 것
임을 강조했다.
또 그동안은 노동을 비용 개념으로 간주했으나 정보사회에서는 자산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설명하며 과거 자본가들은 기업의 자산이 생산 장비였기에 노동자가 장비를 열심히 닦도록 했으나 앞으로는 노동자들의 이마를 닦아줘야 할 것이라는 대목에서는 폭소가 터져나왔다.
지난해 9월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방문 때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하며 느낀 감동도 전달했다. 「한국의 앞선 IT기술과 일본의 시장이 서로 협력한다」는 협약서 내용이 말해주듯 IT는 근대사 이후 처음으로 한국이 일본을 앞선 기술 분야라는 점에서 동족으로서 함께 자긍심을 갖자고 말했다.
그리고 조 사장은 『강의가 끝날 때까지 한 사람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거부감이나 피곤함으로 눈을 감을 수도 있었는데 그런 일도 없었습니다. 끝난 후 오랫동안 박수를 받았고 긴 복도를 걸어나올 때까지 아무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지날 때마다 「수고했습니다」라는 인사말을 하더군요』라며 상당히 고무된 표정이었다.
하지만 조선콤퓨터쎈터만 해도 펜티엄Ⅲ가 전체 기종의 10%에 불과하고 인터넷이 개통돼 있지 않는 등 북한 지역의 소프트웨어 개발 환경은 예상보다 훨씬 열악했다는 것이 조 사장의 설명이다. 그가 선물로 가져 간 개인휴대단말기(PDA)와 한글 키보드 두 벌, 휠마우스 10개, 그리고 인성정보가 제공한 한글윈도우98과 오피스 프로그램은 북한 엔지니어들에게 좋은 구경거리가 됐다.
『북한이 사용하는 조선어 키보드를 구경하려 했으나 모든 키보드에 조선어가 없었고 영문 자판을 직접 외워서 사용하고 있었다』는 게 조 사장은 증언이다.
그래서 사이버교육센터를 설립해 북한 엔지니어들에게 IT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려던 당초 계획은 북한이 어느 정도 인프라를 갖춘 이후로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소프트웨어 개발 부문에서는 상당한 실력을 보이고 있었으며 그들에게 환경만 개선해주면 엄청난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잠재력을 직접 확인했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조 사장은 향후 추가 방문을 통해 북한 개발자들의 수준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그들의 수준에 맞는 남북한 공동 프로젝트를 발굴, 중계 역할도 맡을 계획이다.
조 사장이 북한에서 돌아오자마자 국내 IT업체 대표로 구성된 민간대표단이 북한 방문길에 오르는 등 남북한간 민간 IT 교류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특히 이들 민간대표단들도 남북간의 정보격차를 해소하고 서로 경제적 실익을 보장하면서도 당장 실현 가능한 IT 분야의 협력방안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조 사장의 대북사업 방향과 일치한다.
결국 조 사장의 이번 방북은 「국내 PC용 소프트웨어 개발 1호」와 「국내 대학생 벤처창업 1호」라는 그의 인생 기록에 「민간 IT 벤처 분야 북한 교류 1호」의 메달을 추가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였다.
<주상돈기자 sdjoo@etnews.co.kr>
◆ 약력◆
△1957년 8월 경남 김해 출신 △1977년 2월 서울 용문고등학교 졸업 △1983년 8월 비트컴퓨터 설립 △1985년 2월 인하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1985년 4월 (주)비트컴퓨터 대표이사 취임. 법인전환 △1989년 4월 표창-체육부 장관, 서울올림픽 기여 △1989년 10월 비트기술연구소장 취임 △1994년 12월 비아이티출판사 설립 △1997년 연세대 보건대학원 보건환경 고위정책과정 수료 △1997년 11월 벤처기업대상-통상산업부 장관 △1997년 12월 표창-정보통신부 장관, SW기술부문 유공자 △1998년 6월 정보문화상-국무총리 △1998년 9월 DB대상-정보통신부 장관 △1998년 12월 「98 DB대상」-국무총리 △1999년 12월 보건복지부 표창-보건복지부 장관 △1999년 12월 비트교육센터 실업대책추진 공로표창-국무총리 △2000년 3월 모범납세 표창 △2000년 5월 코스닥 최우수IR기업 선정 △2000년 9월 벤처기업대상 동탑산업훈장 수상 △현 벤처기업협회 부회장,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부회장, 대한의료정보학회 부회장, 인하대학교 겸임 부교수 △2001년 1월 조선콤퓨터쎈터 초청으로 북한 방문
많이 본 뉴스
-
1
“中 반도체 설비 투자, 내년 꺾인다…韓 소부장도 영향권”
-
2
기계연, '생산성 6.5배' 늘리는 600㎜ 대면적 반도체 패키징 기술 실용화
-
3
네이버멤버십 플러스 가입자, 넷플릭스 무료로 본다
-
4
KT 28일 인사·조직개편 유력…슬림화로 AI 시장대응속도 강화
-
5
삼성전자, 27일 사장단 인사...실적부진 DS부문 쇄신 전망
-
6
'주사율 한계 돌파' 삼성D, 세계 첫 500Hz 패널 개발
-
7
K조선 새 먹거리 '美 해군 MRO'
-
8
단독롯데, '4조' 강남 노른자 땅 매각하나…신동빈 회장 현장 점검
-
9
상장폐지 회피 차단…한계기업 조기 퇴출
-
10
GM, 美 전기차 판매 '쑥쑥'… '게임 체인저' 부상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