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실리콘밸리의 전력위기

박주용 국제부장 jypark@etnews.co.kr

미 캘리포니아주의 전력 사태가 외신을 통해 날아들고 있다. 선진국 중에서도 첫 손가락에 꼽히는 미국에서 그것도 서부의 중심 지역이 전력난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다.

비상사태 선포로 이어지면서 4주째 접어들고 있는 이번 전력난은 간단한 문제가 아닌 모양이다. 캘리포니아주 주(州)전력통제기관은 6일에도 단전조치가 가능한 전력비상 3단계를 또 다시 연장했다. 발전소에서 전력을 구매해 전력을 공급하는 민간 전력회사들의 파산위기로 불거진 이번 사태는 발전시설 확충 등의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쉽지 않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의 전력난이 각별히 관심을 끄는 것은 이곳에는 세계 IT산업의 메카 실리콘밸리가 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에는 이름만대도 고개를 끄덕일 세계 유수의 IT업체들이 모여 있다. IT산업의 심장과 같은 이곳에 모인 업체들은 세계 IT산업을 이끌고 있으며 신경제로 대변되는 미국의 경제를 주도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단전은 사실상 이 지역의 기능 정지를 의미한다. 이같은 사태가 발생하면 미국 경제가 받을 충격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세계경제의 20%를 차지하는 미국 경제가 흔들린다면 세계 경제 역시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하기 힘들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때문에 실리콘밸리를 포함한 캘리포니아주의 전력문제는 세계 각국 언론으로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전력위기가 아니었다면 인재가 첨단 산업지역인 실리콘밸리의 기능을 일순간에 정지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이들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이번 캘리포니아주 전력 문제는 지진 등 자연재해가 아닌 전기가 첨단 시설이나 도시를 한 순간에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 주고 있다.

전력 수급 관리 실패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가는 미국뿐만이 아니다. 가까운 동남아에서도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대만의 경우 국가에서 전력을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원전건설이 논란 끝에 백지화돼 전력 확보 정책에 혼선을 빚어지면서 비상이 걸려 있다. 이 때문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생산시설 확충에 나선 반도체 업체들을 비롯, 주요 첨단산업체들은 증설된 공장에 필요한 전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없게 됐다. 현지 전문가들은 전력문제가 장기적으로는 전체 산업기반을 흔들어 놓을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금도 부족한 이 나라의 전력은 오는 2007년에는 2550MW의 전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될 만큼 수급문제가 심각한 실정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나 대만의 전력 문제는 한국전력의 민영화를 앞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의 경우 지역마다 2개 이상의 민간 전력공급업체들이 활동하는 복수운영체제임에도 불구하고 캘리포니아주와 같은 전력 문제가 발생했다. 한전이 민영화되더라도 지금처럼 국내 전력시장에 전기를 공급할 업체는 하나뿐이다. 따라서 민영화 이후 한전의 경영이나 내부문제로 전력 공급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만큼 치명적일 수 있다.

매년 여름 열대야가 시작되면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예비전력률이 위험수위를 넘나들 만큼 우리의 전력 사정은 그다지 여유가 없다. 국가가 사회기반 시설로 관리하고 있는 지금도 전력이 결코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별 다른 대책없이 국가 전력관리가 민간업체에 이양되고 일반 기업과 다를 게 없는 손익 중심의 경영이 이뤄진다면 전력사정이 나아지기보다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5조원이 넘는 부채를 안고 있는 한전의 민영화는 불가피한 선택일 수가 있다. 그러나 한전 민영화가 산업기반을 흔들게 되거나 국민들을 불편하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중장기 수요 분석과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발전시설 확충이나 산업경쟁력을 결정지을 전기요금 산정 등 한전 민영화에 대응해 앞서 풀어야 할 과제에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