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산 제대로 쓰자](4)정부부처간 팀워크가 없다

국민의 정부 출범이전 과학기술계가 새정부에 요구한 것 중의 하나가 국가의 연구개발 정책을 총괄할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설치였다. 각 부처가 산발적이고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는 국가 연구개발 정책을 하나의 틀로 묶고 대통령이 위원장이 돼 직접 챙겨달라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과학기술 관련 부처는 물론 예산당국간 힘겨루기로 인해 중구난방식으로 진행돼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는 국가 연구개발 시스템을 바로잡아 연구개발 예산을 제대로 쓰자는 취지였다. 물론 과학기술계의 자성과 과학기술 주무 행정부처인 과학기술부의 강력한 요구가 크게 반영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국과위가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해 설치되고 대통령 주재로 몇차례 회의가 열렸지만 여전히 각 부처의 리베로식 연구개발 정책은 하나도 변한 게 없다. 그렇다 보니 연구주체들이 연구제안서를 들고 이 부처 저 부처 입맛에 맛는 정부부처를 찾아다니기 일쑤고 정부부처 당국자들은 연구원들에게 넘어가기 다반사인 게 사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정통부와 과기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산자부가 고집스럽게 추진하고 있는 다목적 성층권 비행선 개발사업.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팀이 시제품 개발 이후 후속 연구를 위해 과기부와 정통부를 상대로 제출한 과제명은 「성층권 비행선시스템 기술연구」. 「죽기 아니면 까무러지기식」으로 연구과제로 선정해줄 것을 요구했던 연구사업이다.

한국항공연구원이 당시 제출한 과제제안서상의 성층권 비행선시스템은 고도 20∼30㎞ 상공에서 태양전지와 연료전지를 이용해 10년간 공중에 머물면서 이동통신 및 고정통신 중계서비스는 물론 우주 X선 관측, 태풍추적, 오존황사 등 공해물질 탐사, 밀입국선 감시, 조난선박의 위치파악, 해양오염 탐지, 도시계획 및 지도제작, 농산물 작황조사, 기상관측, 대기오염 감시 등 원격탐사기능을 주 연구내용으로 하고 있다.

항우연은 과기부에 원격탐사용 성층권 비행선시스템 개발을 연구과제에 포함시켜 줄 것을 제안했으나 거부됐다. 과기부는 항우연측의 연구과제를 한때 21세기 국가경쟁력을 책임진다는 「21세기 프런티어연구개발사업」 후보과제에 포함시켰다가 프런티어과제 세부 연구기획사업을 거치면서 이미 추진중인 다목적 실용위성인 아리랑 1호와의 기능이 유사하다는 이유를 들어 타당성이 없다는 결론에 따라 후보과제에서조차 제외시켰다.

그러자 항우연측은 이번엔 정통부를 쑤셨다. 때마침 국제통신연맹(ITU) 전파통신총회와 세계전파통신회의에서 성층권 비행선시스템을 IMT2000 중계시스템으로 이용하자는 분위기가 일자 항우연측은 전자통신연구원을 내세워 지난 99년 11월 연구제안서를 냈다. 과제명은 「성층권 무선중계시스템 기반기술연구」.

IMT2000 중계시스템에 마땅한 대안이 없었던 정통부는 이를 당장 활용할 속셈으로 정통부 선도기반기술개발사업에 포함시키기로 하고 한때 이를 적극 검토했으나 연구기간이 10년이나 걸린다는 대답에 지난해 9월 연구사업을 포기했다.

그로부터 3개월 후인 지난해 말 산업자원부는 갑작스럽게 과기부와 정통부가 검토했던 성층권 비행선시스템 연구개발사업에 「다목적」이라는 단어를 추가한 「다목적 성층권 비행선 개발사업」을 차세대 신기술 개발사업으로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산자부가 이 연구사업에 투입할 정부예산은 오는 2007년까지 총 375억원. 1단계인 2003년까지 총 98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산자부는 특히 차세대 신기술 개발사업으로 이 사업 외에 대화형 미디어솔루션(IMS), 자동차 전장품(IP full cockpit) 모듈 개발, 초고속 웹서버 개발, IMS 개발, 선박의 지능형 자율운항제어시스템 개발, 고분자 전구체를 이용한 고기능성 신물질 개발, 산업용 초소형 단백질칩 시스템의 대량생산 기술개발, 차세대 무선통신용 트랜시버시스템 개발, 슈퍼지능칩 및 응용기술 개발, 생체 하이브리드 재료 및 응용기술 개발과제 등을 선정해 오는 9월까지 200억원을 지원키로 했다.

그러나 항우연이 산자부에 제출한 다목적 성층권 비행선 개발사업은 한마디로 과기부의 원격탐사용과 정통부의 통신중계시스템용을 묶어놓은 것. 더군다나 이 정도 규모면 당연히 국과위의 사전조정작업을 거쳐야 하는데도 산자부나 국과위 간사부처인 과기부는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원로과학자인 K박사는 『정부 각 부처가 따로 놀다보니 항우연의 플레이에 놀아난 꼴』이라고 혹평했다.

그는 『다목적 성층권 비행선 개발사업이 산자부의 판단대로 타당성이 있는 사업이라면 왜 과기부가 이를 후보과제에서 탈락시켜야 하고 「다목적」엔 통신중계시스템이 당연히 포함되는데 정통부가 타당성 없음을 들어 연구과제 대상에서 제외시켜야 했느냐』고 반문했다. 국민의 정부 틀 안에 있는 정부부처간 연구과제를 보는 시각이 이렇게 다를 수 있냐는 것이다.

국과위의 설치로 외형적으로 정부의 연구개발체계가 몸은 하나가 됐지만 손발이 각각 따로 노는 대표적인 사례다.

국과위 간사부처인 과기부의 고위관계자는 『산자부의 과제선정은 국과위에 당연히 보고돼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전제하고 『매년 각 부처가 남는 연구개발 예산을 처분하기 위해 과제를 급히 선정하는 게 관례화돼 있다』고 털어놨다.

산자부는 일방적인 과제선정 사유에 대해 『일단 선정된 만큼 오는 4월 국과위의 국가연구개발사업 조사·분석·평가를 통해 이를 철저히 따지면 된다』고 말했다.

21세기 들어 환경이 급변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사후약방문」격의 태도다.

<정창훈기자 ch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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