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유착<26>
『내가 부처 가운데 토막이고, 내가 위대한 기업인이라고 생각해 본 일이 없네. 내 걱정 말고 자네 처신이나 제대로 하게.』
나는 밖으로 나왔다. 그 이후로 권영호의 존재를 잊기로 했다. 그러나 그가 보낸 괴편지는 그후에도 한동안 후유증을 앓게 되었다. 한 해가 지나서 우연히 만나 식사를 하게 된 사람도 그 괴편지 내용을 탐색하였다. 이를테면, 그 유부녀 기업인이 누구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럴 때는 잊었던 권영호의 일이 상기되어 다시 혈압이 오른다. 그렇지만, 기업이 더욱 확장되면서 새롭게 대두되는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나는 자회사를 확장시켰다. 자회사란 그룹에서 문어발처럼 방계 회사를 거느리는 일과는 약간 성질이 달랐다. 경우에 따라서는 경영권을 갖기도 하지만, 대부분이 주식투자만 하고 방관하는 편이었다. 주식 투자에 있어서도 최대 주주라고 해도 경영은 하지 않는다. 재벌 기업에서 하듯이 경영을 독점하면 새로운 재벌 그룹의 형성을 의미한다. 재벌 그룹사가 해체되는 형편에 새로운 그룹을 만들 이유는 없었다.
더구나 나는 자회사를 확장한다고 해도, 한때 재벌 그룹사에서 했던 것처럼 모든 분야의 업종을 흡수하지는 않았다. 그만한 자금도 없었다. 내가 주종을 이루는 자회사는 컴퓨터 자동화 사업과 인터넷 사업, 컴퓨터 부품 생산 사업, 그리고 창업투자를 비롯한 금융사업이었다.
자회사들은 순탄하게 성장했다. 크게 성장 추세가 없는 회사도 일단 안정이 되었다. 나는 십여개의 자회사에 대표이사로 등록되어 있었는데 점차 전문 경영인에게 사장 자리를 내놓을 준비를 하였다. 그렇게 되면 편의상 회장이 되는 것이었지만, 나는 그 회장이라는 직책을 상당히 싫어했다. 그 용어가 주는 의미를 싫어한다기보다 그 칭호 자체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그 무렵에 그 낌새를 알았는지, 고향 선배 정치인이 나를 만나자고 하였다.
『최 회장. 이제 정치에 들어와야지?』
『무슨 말씀입니까? 아직 기업도 제대로 일으켜 놓지 못했습니다.』
『대관절 어디까지 일으켜야 일으킨 것인가? 기업은 그만하면 되었어. 자네가 아니라도 굴러갈 정도가 되지 않았나?』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럼 정가에 들어오게. 내년 국회 선거에 직접 지역구로 뛰든지, 아니면 전국구로 들어오든지 말일세.』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기업인은 도둑놈이고 정치인은 사기꾼이라고 하는데 나는 도둑질도 하고, 이젠 사기까지 치라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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