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인터넷 벤처기업을 짓누른 대표적인 용어 가운데 하나는 「거품」이다. 상반기에 불거진 벤처 거품론이 하반기에 자금난으로 이어지더니 수익모델 논쟁에 불이 붙었고 급기야 벤처 위기론으로 치달았다. 때마침 터진 정현준과 진승현 사건은 벤처기업이 기술개발보다는 「머니 게임」에 몰두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결국 벤처가 갖고 있는 경제적 역할은 물론 사회적인 신뢰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새해가 밝아오면서 어두운 경제 전망에도 불구하고 벤처에 대한 관심은 다시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한국경제의 원동력이었던 재벌과 공기업에 우리 경제의 장래를 맡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판단때문일 것이다. 부존자원과 자본이 부족한 우리 경제의 체질강화를 위해서는 고부가가치·지식집약 산업 위주의 벤처 육성이 필수적이라는 점도 한 몫 했다. 이때문에 올해 산업계의 키워드 역시 「벤처 육성」에 맞춰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이에 발맞춰 인터넷기업을 비롯한 주요 벤처기업은 신년을 맞아 장밋빛 청사진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다양한 수익 위주의 사업계획은 물론 지난해에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높은 매출과 순익 예상치를 내보이고 있다. 적게는 200%에서 많게는 500%까지 매출목표를 높게 잡고 있는 것이다. 이미 시장에서 부도 위기에 몰려 있다는 벤처기업도 사업계획만은 우량기업을 뺨칠 정도로 거창하다.
물론 이같은 공격적 기업경영은 어두운 벤처비즈니스환경을 고려할 때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문제는 구체적 전략이나 사업계획 없이 공수표처럼 숫자를 부풀리면서 또 하나의 거품을 양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국내 기업환경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문제가 「투명성」이었다. 투명성에는 관행이나 뒷거래·인맥 등에 연연하지 않는 깨끗한 비즈니스 환경도 포함되겠지만 우선은 누구나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자료나 데이터가 뒷받침돼야 한다. 국내 벤처기업에 투자할 때 기업에서 공개한 자료를 믿지 못하고 설이나 떠돌아다니는 소문에 솔깃하는 것도 이같은 숫자나 데이터에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올해 인터넷 벤처기업은 실제로 우리 경제 성장의 엔진으로 도약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기로에 설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각 분야에 산재한 거품을 빼는 일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아마도 그 첫 걸음은 숫자에서 거품을 빼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인터넷부·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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