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위기는 곧 기회다

김근태 디지토닷컴 사장

시간은 누구에게나 같은 길이로 느껴지지 않는다. 다른 경험과 인식의 차이가 각자에게 다른 길이의 시간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지난 한 해는 벤처기업인들에게 매우 짧고 우여곡절의 시간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투자열기는 투자광기가 되었고 역대 재무장관들의 숙원이었던 지하자금 양성화와 해외도피자금 대책이 일거에 해소되었다. 자본과 인력의 대이동은 많은 벤처스타들을 탄생시켰다. 묻지마 투자 열기가 고조되었을 때 닷컴기업 위기론이 서서히 불을 지피었다. 하지만 옥석 가리기, 벤처 정신 재무장, 수익모델 재점검의 기회로 삼자던 분위기가 심각한 경제위기론과 더불어 과매도상태로 거침없이 진행됐다.

2·4분기 이미 금융권내에서는 현대건설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라 부도처리되면서 그 때가 바닥일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결국 해결되지 못하고 지난해 하반기 내내 우리 경제를 짓누르고 말았다. 자본시장을 단지 수급논리로 보고 공급량을 조절했던 정부의 수단은 제한적이었다. 금융권과 기관은 연일 팔기 바쁜데 받아줄 곳은 오로지 외국인밖에 없으니 정부의 입장도 매우 민망했으리라.

국내 단기부동자금은 200조원이 넘는데도 안정적인 자금 휴식처만 찾아 들고 도무지 투자심리는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수요가 없는 것이다. 공급만 조절하고 있는 정부는 이 점에 착안해야 한다. 연기금, 근로자 주식 저축 등의 조치보다는 더 근본적인 수요 부양을 해야 한다.

이제 정신없이 짧고 힘든 시간을 지나 새로운 21세기가 시작되었다. 2001년은 우리에게 어떤 길이의 시간으로 다가오게 될까. 자본주의 경제의 본질은 순환론이다. 호황이 있는가 하면 언제 그랬느냐 싶게 불황이 있고 산이 하늘높은 줄 모르고 치솟더니 곧 골이 깊어 바닥을 예측하기도 어렵다. 대기업에 쏠려 있던 경제구조가 이제는 벤처기업이라는 다른 축을 형성해 국가위기 분산관리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다. 인생의 부침과 마찬가지로 사회나 경제의 명암도 늘 변하고 있다. 혹자는 IMF때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고 한다.

어둠의 계곡을 걸을 지라도 늘 산이 가까이 있음에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한다. 이럴 때 산을 준비하는 자, 그 산을 취할 수 있다. 어려움을 기회로 활용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초심으로 돌아가 냉정히 생각해 보자. 일련의 기술변화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런 환경변화는 기존 기업과 새로 시작하는 기업에 기회뿐만 아니라 위험요소도 제공하고 있다. 기업인들에겐 급속한 환경변화속에서 기회와 위협을 동시에 파악하고 대응하는 자세가 필수적이다. 기회를 앞서 파악하고 서둘러 나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위협요소를 정확히 파악하고 대처하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막연한 허상이 아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해야 한다. 조급한 마음으로 순간에 대박을 터뜨리는 기업을 만들기보다는 안정적인 수익모델을 갖춘 기업으로 키우기 위해 여유를 가지고 준비하고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2001년에는 지레 겁먹고 지치지도 말고 막연한 무지개빛 희망으로 설레이지도 말자. 국내외 정치·경제 상황에 대한 판단속에서 사업계획 및 비즈니스 모델을 재점검해 보고 자기 핵심역량의 올바른 집중계획을 짜자. 비수익부문정리·인력재배치·조직개편·경영개선 등 구조조정, 인사관리에 우선순위, 재무관리와 위험관리능력 제고, 투명성과 효율성 제고 등 꼼꼼히 조사하고 점검·계획하는 것부터 새해를 시작해도 결코 늦지 않다.

결코 IMF만은 못하지만 마우쩌뚱의 서안 대장정을 생각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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