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잉크

종이 신문이 인터넷 신문보다 좋은 점 가운데 하나는 전철 안이나 화장실에서도 읽을 수 있고 눈앞에서 신경 쓰이게 하는 파리를 잡는 도구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구별이 조만간 사라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파리 잡는 도구로는 아직 부족하지만 곧 화장실에서도 인터넷 신문을 읽을 수 있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및 전자잉크가 속속 선보이고 있다.

최근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E잉크사는 전자잉크를 사용하며 마음대로 휘는, 가로 세로 25인치의 디스플레이를 개발했다. 이 회사의 러스 윌콕스 부사장은 자사가 개발한 차세대 디스플레이에 대해 『종이 4장 정도의 두께에 종이와 같은 질감과 모양을 갖추고 무선통신을 통해 자동적으로 정보가 업데이트되는 형태가 될 것』이라면서 『여기에 사용되는 전자잉크의 전력소모도 기존 디스플레이에 비해 획기적으로 낮다』고 주장했다.

캘리포니아주 소재의 자이리콘이라는 업체도 최근 전자종이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E잉크의 전자잉크가 검은 칩과 흰 칩이 들어있는 마이크로 캡슐에 전기적 자극을 통해 문자와 그래픽을 표현하는 데 비해 자이리콘의 전자종이는 플라스틱 판 사이에 흑백 구슬이 들어있는 액정 디스플레이다. 이 디스플레이의 픽셀들이 전기적 신호에 반응하면서 흰색에서 검은색으로 혹은 검은색에서 흰색으로 변하게 되는 원리를 이용하고 있다. 현재 15V의 전압을 사용, 200dpi의 해상도를 구현하는 수준이며 조만간 600dpi 수준으로 향상시킬 계획이다.

전자잉크나 전자종이는 메시지를 전기적으로 쓰고 지울 수 있으며 선명도도 기존의 인쇄보다 훨씬 뛰어날 뿐 아니라 잘 찢어지지도 않고 전력소모도 현재의 디스플레이 기술보다 훨씬 낮다는 게 관련업체측의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5년 이내에 이러한 기술이 실생활에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종이 기술이 가장 활발하게 도입될 분야로는 전자신호시장이 꼽히고 있다. E잉크가 자사 기술의 응용상품으로 내놓은 제품인 「이미디어(Immedia)」는 행인에게 메시지를 흘려보내는 상점 광고판과 비슷한 형태다. 가격조건만 맞춰진다면 거리에 수없이 나붙는 포스터나 상점에 붙은 상품광고들이 전자종이로 대체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디스플레이 시장 전문가들은 광고게시물·인쇄·간판 등 기존 디스플레이 기술을 포함하는 광고 디스플레이 시장의 총 규모가 연간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느린 응답 속도로 인한 잔상현상, 해상도, 컬러구현 등 현재 전자종이 기술이 안고 있는 문제가 해결된다면 전자종이와 전자잉크 관련 기술이 앞으로 디스플레이업계에 혁명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의 전자종이 기술도 이러한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지는 못한 상황』이라며 『여기에 원거리에서도 정보가 업데이트되는 무선기능도 제대로 갖춰야 진정한 전자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기존 디스플레이업계에서도 유기발광다이오드 기술 등 전자잉크와 경쟁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이 많이 나오고 있어 전자종이 기술은 틈새 디스플레이 기술밖에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전자종이와 전자잉크가 서적과 신문의 가격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태라며 일반인들의 섣부른 기대감을 경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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