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왕따」 퀄컴의 자구책

퀄컴이 「더는 못참겠다」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9일 김성우 지사장이 정보통신부를 방문, 동기식 IMT2000사업권에 참여하는 국내 기업에 기술협력은 물론 지분투자까지 모든 것을 지원하겠다고 당당히 밝힌 것이다. 정보통신업계가 떠들썩한 퀄컴의 이같은 의지는 이전의 입장과는 분명히 다르다. 국내 동기식사업자와 기술 및 지분 제휴에 나서겠다는 것은 퀄컴의 일관된 입장이었지만 그 수준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퀄컴은 그간 상징적 의미의 투자를 강조해왔다. 지난해 하나로통신이 요청한 지분투자도 너무 많다며 완곡히 거절한 바 있다. 그런 퀄컴이 『한국 기업이 원하는 만큼의 지분투자도 감행하겠다』고 밝힌 것은 진전된 팩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퀄컴의 전격적 입장 선회에 대해 우리 정부나 업계가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거나 마치 동기식에 구세주가 등장했다는 식의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은 금물이다. 엄밀히 따져 퀄컴의 입장 변화는 「왕따」처지로 몰리는 것을 막고 탈출구를 찾겠다는 자구책에 불과하다.

퀄컴은 누가 뭐래도 한국시장을 숙주로 해서 성장한 기업이다. 퀄컴 관계자들이야 동의하지 않겠지만 한국에 대한 의존도가 가장 큰 회사다. 실제로 한국 정부가 단말기 보조금을 철폐하자마자 퀄컴의 주가가 크게 떨어졌다.

게다가 3세대 이동통신시장에서 퀄컴이 가장 믿는 동시에 유일하게 비빌 언덕인 한국이 퀄컴을 철저히 외면했다. 세계 최대 CDMA업체인 SK텔레콤과 한국 최강의 종합통신사업자 한국통신은 동기를 포기하고 비동기 사업권을 따냈다. 노다지 CDMA시장을 열어주었던 한국이 3세대에서는 이를 버리고 비동기로 말을 갈아탄 것이다. 3세대 이동전화사업권을 획득한 전세계 60여개 기업 가운데 동기식사업자는 일본에 한 곳이 있을 뿐이다. 퀄컴은 시쳇말로 「왕따」가 되고 있었다. 위기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다.

퀄컴이 국내 사업자에 대한 지분투자 의사를 밝히면서 『동기식산업의 발전과 육성에 기여하겠다』는 명분을 들고 나온 것은 물론 고마운 일이다. 또 국내 동기산업과 퀄컴의 윈윈 전략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정부와 업계는 냉정한 자세로 따질 것은 따져봐야 한다. 퀄컴이 결코 한국의 이익을 위해 총력 지원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또다시 한국이 퀄컴의 숙주가 돼서는 곤란하다.

<정보통신부·이택기자 ety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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