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소 초고속장비업체, 올해 나기가 두렵다

지난해 초고속인터넷서비스의 전면 확대로 국내 장비산업의 기대주로 부상한 국내 벤처 초고속 장비업체들이 갈수록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더욱 외부 상황이 악화돼 이들 업체의 앞에는 「도태냐 생존이냐」라는 험난한 줄타기가 기다리고 있다.

◇케이블모뎀 제조업체 ● 케이블모뎀 제조업체들의 고민은 장비 입찰에서 벤더파이낸싱이 관행으로 굳어진 데서 기인한다.

두루넷·하나로·온세 등 대형 인터넷서비스제공업체(ISP)들은 대부분 벤더파이낸싱을 장비 공급 조건으로 내걸었다. 특히 올해 케이블인터넷사업을 강화, 중소업체들의 숨통을 터줄 것으로 예상되던 SK텔레콤조차 1년 후 대금을 완불하는 벤더파이낸싱을 진행, 케이블모뎀 시장에서는 사실상 현금 거래가 사라졌다.

이 때문에 지난해 중반 이후 대부분의 케이블모뎀 입찰에서는 벤더파이낸싱을 내세운 모토로라코리아·한국쓰리콤·삼성전자 등 거대 기업들이 물량을 휩쓸고 있는 실정. 이렇다 보니 중소 케이블모뎀 업계에서 찾아낸 해결책이 이른바 「대리입찰」이다. 자금력 있는 업체를 파트너로 확보, 입찰을 대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중소 케이블모뎀 제조업체인 A사는 하나로가 실시한 장비 입찰에 B사의 명의로 참가했다. 케이블모뎀을 생산하지 않는 B사가 영업망과 벤더파이낸싱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A사의 케이블모뎀 장비를 3개월 어음으로 구입해 대신 응찰한 것. A사는 『자체 자금조달 여력이 없는 데다 국내 금융권도 구조조정에 휘말려 파이낸싱은 꿈도 꾸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대리입찰 방식은 입찰 대행업체는 매출 실적을 올리고 케이블모뎀사는 급한 불을 끌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결국 모뎀 공급단가는 당연히 직접 납품할 때보다 떨어지게 돼 수익성 악화에 직면하게 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대로 시장 상황이 지속될 경우 많은 업체들이 도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정보통신부가 통신사업자에게 투자촉진 예산 등을 배정할 때 국산 장비를 우선 구매하도록 권유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DSL 모뎀 제조업체 ● 케이블모뎀 제조업체들은 벤더파이낸싱 때문에 어려움이 가중되는 반면 비대칭디지털가입자회선(ADSL) 모뎀 제조업체들에게는 중소업체에 아웃소싱으로 모뎀을 공급받아오던 현대전자가 한국통신 ADSL 입찰에 탈락한 것이 큰 타격이다. 이에 따라 현대전자의 6개 모뎀 아웃소싱업체들에는 적지 않은 타격이 예상된다.

게다가 관세 인하 등의 조치로 경쟁국인 대만산의 국내 시장 진입 확대도 예상된다. 외장형 ADSL 모뎀의 경우 지난해 5.3%에서 올해는 2.6%로 관세가 인하됐으며 내장형 모뎀은 국제무역기구(WTO) 협정세율에 의해 아예 무관세가 적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의 모뎀 시장 단독 참여도 중소업체들을 크게 긴장시키고 있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아웃소싱을 통해 내외장형 모뎀을 공급해왔으나 올해부터 방침을 변경, 자체 생산을 통해 모뎀 자체공급사업도 진행키로 했다.

이에 따라 하나로통신의 ADSL 모뎀 입찰에 참가한 상태며 수출 물량을 포함, 모 반도체 회사에 수십만개 분량의 모뎀 칩 주문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ADSL 모뎀업체 한 관계자는 『사실 올해가 국내 ADSL 모뎀 시장의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높아 내년이 더 걱정』이라며 『아시아 지역 수출도 추진해봤으나 해당 국가에서 자국 업체 위주로 입찰이 실시돼 수출도 여의치 않다』고 밝혔다.

<유형준 기자 hjyoo@etnews.co.kr

조윤아기자 forang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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