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은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주요 잣대다. 특히 21세기 첨단 디지털 시대에서 과학기술의 중요성은 그만큼 커진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이 분야에 장기적으로 꾸준한 투자와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를 보면 답답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국가의 과학기술계 두뇌가 총집결된 대덕연구단지가 IMF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칼날 같은 구조조정에다 매년 줄어드는 연구개발(R&D) 예산 등으로 연구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
정부출연연 가운데 가장 큰 규모와 연구실적을 자랑하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IMF 이후 기존 연구인력의 절반에 달하는 연구원들이 대학이나 벤처 등으로 빠져나가는 바람에 과제수행이 제대로 될리 없다. 연구소를 이탈한 이들 인력의 대다수가 당시 과제수행의 중추 역할을 맡았던 인력이고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없다.
당초 진행하려던 연구개발과제도 곳곳에서 중단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연구개발과제 평가를 맡고 있는 정보통신연구진흥원은 최근 ETRI의 연구과제 일부에 대해 중단할 것을 검토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과제 계획보다 진행사항이 미미하다는 이유에서다. 진흥원은 지난해 2개 과제만을 대상으로 진행을 중단시켰지만 올해는 이보다 훨씬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ETRI는 연구과제 부실이라는 치명적인 오점을 남기게 된다. 국내 정보통신 연구개발 분야에서 최고라고 자부하는 ETRI의 자존심이 상처를 받을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물론 젊은 연구인력으로 대거 세대 교체한 ETRI의 잠재성은 어쩌면 장기적으로 볼 때 지금보다 더 낙관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당분간 예전만큼의 연구실적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게 ETRI를 아는 대다수 사람들의 공통적인 이야기다.
그렇다고 현재의 상황을 묵과한다면 일은 더욱 커질 수 있다. 혹자는 ETRI 사정은 이미 다 아는 사항인데 지금 와서 또 거론하느냐고 불평을 늘어놓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다. 국가나 ETRI에서 안정적인 연구환경 기반을 마련하지 않는 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계는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을 만큼 불투명해진다. 100년을 내다보는 과학기술정책, 늦었지만 서둘러야 한다.
<경제과학부·신선미기자 sm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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