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세트톱 박스 유통시장 장악 의미

국내 업체들이 세계 디지털 세트톱박스 유통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세계 디지털 세트톱박스 시장에 진출하려는 국내 업체들의 끊임없는 기술개발 노력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올해 약 60억달러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예상되는 세계 디지털 세트톱박스 시장 가운데 유럽과 중동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유통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10%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과 필립스·노키아·페이스·파나소닉 등 세계적인 대형 업체들이 이 시장에 눈을 돌리지 않고 있다는 점도 국내 업체들에는 기회로 작용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벤처기업인 국내 세트톱박스 업체들이 많은 현지 업체와 일본 등 경쟁사들을 제치고 유통시장이나마 50% 이상을 장악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의미를 갖고 있다.

휴맥스·한단정보통신 등 국내업체들이 세계 유통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이들 업체가 현지의 외국 경쟁사들보다 한발앞서 높은 기술력을 요하는 수신제한장치(CAS)를 탑재한 제품을 개발, 출시하는 등 기존 무료방송용 FTA(Free to Air)장비에 이어 차세대 제품인 CAS 제품에서도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데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위성방송수신기와 케이블방송수신기를 비롯한 디지털 세트톱박스를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하기 위해서는 세계 각지의 방송사들이 채택하고 있는 방송방식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춰야만 가능하다.

최근들어 세계 각국의 방송사업자들은 각기 다른 방식의 유료방송 시청을 위한 CAS 규격을 지원하고 있다. 그 종류만해도 나그라비전·바이억세스·NDS·이리데토·MIH·세카·디지치포·크립토웍스·코아텍·파워뷰 등 10개에 달하고 또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세트톱박스를 개발, 판매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인증을 받아야하는 등 절차가 상당히 까다롭다. 따라서 일단 CAS 제품을 개발하기만 하면 직공급시장 진출도 노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국내 업체들의 유통시장 장악이 곧바로 방송국을 대상으로 한 직공급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많은 기대를 낳고 있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특히 최근 국내와 일본·동남아 등지에서도 조만간 위성방송을 본격화할 예정으로 있는 등 세계 디지털 세트톱박스 시장이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국내 업체들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계속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올 초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세계 디지털 세트톱박스 시장은 지난 98년 31억달러 규모에서 지난해 45억달러 규모로 성장한 데 이어 올해는 56억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또 내년에는 62억달러 규모로 늘어나고 오는 2002년에는 68억달러 규모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유럽 및 중동지역의 유통시장을 장악하면서 기술력을 쌓아온 국내 업체들에 향후 직공급시장에 본격 진출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을 넓혀주는 것이어서 기대되는 바가 크다.

실제로 휴맥스·한단정보통신·현대디지털테크·알파캐스트 등 국내 세트톱박스 업체들은 벌써부터 유통시장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방송사 직공급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휴맥스는 유럽과 중동지역에서 성공한 여세를 몰아 세계 세트톱박스 시장의 50%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시장 공략을 위해 지난 7월에는 삼성전자와 함께 「크로스디지털」이라는 합작 벤처를 설립, 현지 방송사를 대상으로 한 물밑접촉을 벌이고 있다.

휴맥스는 이를 시작으로 방송사를 대상으로 한 세계 디지털 세트톱박스 직공급시장에 본격 진출, 내년에는 올해보다 2배가 늘어난 2억5000만달러의 수출실적을 달성할 계획이다.

또 한단정보통신은 지난 9월과 10월에 대만 위성방송사업자인 CSTV와 터키 방송사업자인 CINE5사와 각각 5만대와 4만대 규모의 케이블 및 위성방송 수신용 디지털 세트톱박스 수출계약을 체결, 직공급 시장에 본격 뛰어든 데 이어 유럽 및 동구지역의 방송사들과도 활발한 수출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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