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 초심(初心)...

이현덕 논설실장 hdlee@etnews.co.kr

요즘 『초심(初心)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상황이 어렵게 꼬일수록 처음 일을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으로 돌아간다면 사태 해결이 쉬울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어떤 자리든 처음 출발할 때 사람들의 결의와 각오는 남다르다. 정부나 기업체·연구계·학계 등 가릴 것 없이 누구나 직책을 맡으면 그렇다. 주어진 책무를 공명정대하게 처리해 후인들의 귀감이 되고 싶어한다. 이런 각오가 끝까지 유지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런 각오는 시일이 지나면서 차츰 변하게 마련이다. 주변 환경이 그를 원래 모습에서 자꾸 탈색시키기 때문이다.

인간이 초심을 유지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러나 초심을 상실하면 그때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제2의 경제위기론이 나돌고 있다. 정치·경제·사회 등 어느 곳 하나 매끄럽게 굴러가지 않는다. 공기업과 민간기업의 구조개혁도 부진하다. 이 과정에서 노사간의 갈등도 심각하다. 엊그제는 농민들의 고속도로 점거사태까지 일어났다. 정치는 정쟁으로 날을 지샌다. 고통받는 국민들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이런 총체적 난국을 극복하려면 모두가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 출발할 때 가졌던 그 마음으로 냉정하게 사태를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초심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실타래처럼 엉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가닥조차 잡기 어려운 현재의 난국을 푸는 단초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되새겨 봐야 할 말이다.

경행록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위정(爲政)의 요체는 공정과 청빈이요. 성가(成家)의 방도는 근검이다.」 지금 우리한테 가장 절실한 말이 아닌가 한다. 위정자가 공정하고 청빈하며 국민들이 근면하고 검소하다면 지금의 난국을 극복 못할 이유가 없다. 역사적으로 청백리치고 공정하고 청렴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부를 축적한 사람치고 근검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정부나 국민들이 IMF사태를 맞았을 때인 3년전 가졌던 마음으로 지금까지 제 역할에 충실했다면 오늘날 제2위 위기론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또 정부가 고위 공직자와 사회지도층 및 민원관련 중하위 공직자, 부실기업, 금융기관 비리 등에 대한 전방위 사정작업에 착수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공직자와 기업인들이 처음 시작할 때 가졌던 마음을 버렸기 때문에 사정대상이 된 것은 아닐까.

조선조 초기에는 청빈사상을 정치철학으로 승화시킨 청백리들이 많이 나왔다. 조선조 중반까지 탄생한 청백리는 모두 110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후반들어서는 청백리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처음 지향했던 청빈사상을 버렸기 때문이다. 채근담에도 「현명한 사람은 사적인 이해를 탐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번 원칙을 저버리면 깨끗한 마음이 차츰 더러워지고 나중에 자신도 검게 되고 마는 법이다.

비단 이것은 고위 공직자만의 일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다 해당되는 일이다. 천년 만년 사는 사람은 없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바른 처신으로 후세의 귀감이 된다면 개인이나 국가적으로 얼마나 좋은 일인가.

최근의 경제난도 마찬가지다. 부존자원도 부족하고 내수나 수출경기가 가라앉으면 모두가 근검절약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그것은 자수성가의 가장 기본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의 일부 졸부들의 과소비 행태는 지탄받아 마땅할 것이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날씨는 춥고 실업자는 늘고 있다. 게다가 취업난도 심각하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지만 한쪽에서는 노숙자들이 영하의 추위에 떨고 있으며, 라면 한두끼로 하루를 보내는 데 다른 한쪽에서는 하룻밤 유흥비로 기십만원에서 기백만원씩 뿌리고 있다면 누가 이쁘다고 할 것인가. 이는 사회갈등과 계층간 위화감만 조성할 뿐이다. 가진 자들도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처음 부를 축적할 때의 자세로 말이다. 부자들이 근검절약하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한마디로 현재의 난국을 극복하는 데 기적이나 우연은 있을 수 없다. 모든 국민이 3년전 가졌던 결연함으로 무장해야 한다. 그것만이 지금의 난국을 극복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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