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희(66).
그는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아직도 어느 한 직함으로 불리기에는 활동 분야가 너무 많고 정열적이며 자유분방하다.
비록 이어령 교수나 성기수 박사처럼 대중적인 스타는 아니지만 컴퓨터통신업계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다.
유경희씨는 숱한 대명사를 보유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e메일을 개발해 보급한 사람, e메일 ID 1호인 「ykh001」의 주인공, 천리안 명명자, 한국컴퓨터통신의 선구자, 노인정보화의 전도사, 최고령 프리랜서 등등.
특히 그는 지난 20여년간 정보처리 분야 한국산업규격(KS)을 600건이나 제정한 정보기술(IT) 분야의 산증인이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대명사를 지닌 그지만 아직도 현역 못잖은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산업규격 심의회 정보처리부회 위원장, ISO/TC46 한국위원회 위원장, 인터넷집현전 회장 등 IT와 인터넷 분야에서 중요한 일을 몸소 처리하고 있고 상명대 강사로도 일하고 있다.
유경희 회장은 한국정보유통센터 회장을 끝으로 공직과 현역에서 물러났지만 지난 98년 사단법인 인터넷집현전을 세워 노인정보화를 위해 온몸을 불사르고 있다.
그는 지난 60년 이후 40년간을 오로지 컴퓨터통신의 대중화와 정보화 사회를 위해 올곧게 살아왔으며 남은 여생까지 정보화를 위해 투신하고 있다.
근엄하면서도 온화한 풍채, 느릿하면서도 또박또박한 말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인터넷은 노인들을 소외시키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해주는 중요한 미디어입니다.』 그가 노인정보화를 위해 힘쓰고 있는 것은 이 같은 믿음 때문이다.
『노인 경시풍조나 젊은이들의 경로사상 퇴색은 어느 한쪽의 책임이라기보다는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노인들이 젊은이나 손자·손녀와 눈높이를 맞춰주지 않은 것도 큰 이유중의 하나지요.』
노인들이 젊은 세대와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 바로 인터넷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손자·손녀에게 또는 아들·며느리나 사위에게 e메일을 보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들은 할머니·할아버지를 존경하고 자랑스러워하고 기꺼이 가까이하고 따를 것입니다.』
인터넷집현전은 자원한 노인들로 운영된다. 노인이 직접 노인들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젊은이들까지도 가르친다.
인터넷집현전은 체험 위주의 교육방식으로 여느 노인정보화교육 프로그램보다 노인들이 선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단 12시간의 교육 과정으로 e메일을 직접 보내고 받거나 심지어 개인 홈페이지까지 만들 수 있도록 해준다.
『6개월 전까지는 노인들이 개인 홈페이지를 직접 만들어 활용하는 쪽에 교육의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러나 개인 홈페이지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이것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1개월 전부터는 할아버지가 만든 홈페이지를 온가족이 함께 쓰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이제 할아버지·할머니가 컴맹이나 넷맹으로 소외받는 신세가 아니라 가족정보화의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그의 이 같은 소신은 뜻을 같이하는 동지를 만나면서 새로운 운동으로 발전했다.
이용태 삼보컴퓨터 회장이 바로 그 사람이다. IT업계 인사들 중에서 뼈대있는 가문 출신으로 유명한 이용태 회장은 박약회 회장을 맡고 있다. 박약은 퇴계 이황 선생의 도산서원에 있는 교실 이름 중의 하나로 원래 「널리 학문을 익히고 예를 지킨다」는 뜻을 지닌 박문약례(博文約禮)의 준말이다. 영남 유림의 대표적인 박약회는 정보화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없애고자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려 하고 있다. 근엄하고 준엄하기만 하던 할아버지가 이제 손자·손녀에게 다정다감한 벗이 되려 하는 것이다. 모든 가정마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따뜻한 정을 나누고 이를 통해 예를 가르친다면 얼마든지 밝고 명랑한 사회를 가꿀 수 있다고 두 사람은 굳게 믿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노소동락 인터넷백일장」이라는 운동을 함께 펼치기로 약속했다. 할아버지·할머니가 먼저 손자·손녀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길은 인터넷이 최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노소동락 인터넷백일장은 대대적인 노인정보화운동을 펼치고 있는 실버넷운동본부와 전자신문의 적극적인 찬동을 얻어 지난 1일부터 이미 시작됐다.
그가 노인정보화에 눈뜨기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59세가 되던 지난 93년부터다. PC통신에 고령자클럽인 원로방을 만들어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후 98년까지 6년간을 원로방의 대표로 활약하며 같은 뜻을 가진 노인들과 노인정보화의 기초를 닦았다.
유경희 회장은 아이디어가 많기로 유명하다. 현역 시절부터 해외 출장을 가거나 일을 할 때도 항상 무엇인가를 끄적거리는 버릇이 몸에 배어있었다. 그래서 「컴퓨터와 우리생활」 「컴퓨터로 글을 씁시다」 「움직이는 사무실」 등 자신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많은 책을 썼다. 그의 저서에는 분야나 도구는 다르지만 하나같이 정보화를 실천하자는 목소리가 담겨 있다.
그는 자유인으로도 유명하다. 현역에서 은퇴한 지금까지 누구에게서도 도움받기를 싫어한다. 그래서 인터넷집현전도 철저히 자원봉사자들로 운영되고 대부분의 경비도 직접 벌어 쓴다. 그가 직접 일본을 드나들며 일거리를 따와 동료들과 같
이 일해 번 돈을 운동비용으로 충당한다.
유경희 회장은 최근 또 다른 아이디어를 실천하기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텔레워크센터의 설립과 한일영상회의가 바로 그것.
젊은이들에게는 PC방이 있지만 은퇴한 노인들에게는 인터넷을 이용할 곳이 없다. 『현역에서 은퇴하고 나서 가장 서러웠던 것은 자동차나 운전사가 없어졌다는 게 아니라 바로 통신 ID와 컴퓨터가 없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본 우정성에서 텔레워크센터를 운영하는 것을 보고 아직도 녹슬지 않은 실력을 지닌 은퇴한 노인들이 컴퓨터를 이용해 맘껏 일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지울 수 없었다.
한일영상회의는 일본의 오키나와가 홍길동전의 율도국이라는 가설이 거의 굳어지고 있는 것에 착안해 이를 한일교류의 장으로 만들고자 하는 그의 소망을 담고 있다. 홍길동의 출생지인 전라도 장성과 오키나와의 우체국을 종합정보통신망(ISDN)으로 연결해 원격영상으로 답사해보자는 발상이다.
70년대 말 한글코드나 한글로마자표기 등 한글 기계화에서부터 시작한 그의 정보화 역정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인터넷은 노인이 주인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기회의 땅」이라는 그의 신념은 「99세까지 팔팔하게 살자는 그의 캐치프레이즈」가 되었고 그가 운영하는 구구팔팔(http://www.9988.or.kr) 사이트는 우리 사회에 조용한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유성호기자 shyu@etnews.co.kr>
35년 대구 출생
61년 경북대학교 사범대 물리학과 졸업
69년 원자력원(청) 연구관
70년 성균관대 대학원 전자자료처리 석사 졸업
78년∼현재 한국산업규격 심의회 정보처리부회 위원장
81년 한국산업연구원 전산실장
81년 대통령표창(한글한자 정보처리)
82년∼현재 ISO/TC46 한국위원회 위원장
85년 동탑산업훈장(정중정보통신망)
91년 데이콤 연구위원
91년 한국통신 정보통신 전문위원
91∼93년 국어정보학회 회장
93년 한국정보산업표준원 원장
96년∼현재 상명대 강사
97년 한국정보유통센터 회장
98∼현재 인터넷집현전 회장
저서
컴퓨터와 우리생활(정보시대사)
온라인 생활-컴퓨터로 글을 씁시다(매일경제)
랩톱기행-움직이는 사무실(민컴)
많이 본 뉴스
-
1
2000만원대 BYD 전기차 국내 상륙 임박
-
2
테슬라, '모델3' 가격 인하…3000만원대
-
3
반도체 유리기판, 중국도 참전
-
4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패자부활전' 놓고 KT·모티프·코난 등 고심
-
5
수술 부위에 빛 쏘여 5초 만에 봉합
-
6
이란 시위·파월 수사에…비트코인 '디지털 피난처' 부각
-
7
민투형 SW, 5년째 사업 난항… 신청 자체가 적어 참여 유도 '동력 확보' 시급
-
8
SKT 자급제 요금 '에어', 100일만에 회원 10만명 돌파
-
9
구글, 22만 쓰던 바이낸스 앱 차단…해외 거래소 접근 '문턱' 높아져
-
10
배터리 광물 價 고공행진…리튬·코발트·니켈 동시 상승
브랜드 뉴스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