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캐피털<4>
자금지원을 요청하는 자들은 먼저 본부장 권영호가 검토하여 걸러내고 있었다. 나에게 올라오는 것은 일단 그의 심사를 거친 것이었다. 그런데 결재의 위계 질서를 무시하고 바로 나에게 접근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럴 경우 나는 뒤로 물러서고, 본부장 권영호 팀에게 넘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만을 상대하려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특히 내가 거절할 수 없는 사람의 명함을 들고 오는 것이다. 미인계로 망신을 당한 일과 인조 목재 사기사건은 바로 그와 같은 루트로 접근을 한 것이다.
이 두 사건은 동시에 진행되었다. 일요일 아침에 거래처 사람과 골프를 치고 있는데 휴대폰이 걸려왔다. 전화를 받자 고향 선배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가 나에게 직접 전화를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연락할 일이 있으면 비서를 통해서 연락이 오거나 주로 내가 연락을 취하는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는 현재 경제관련 각료로 있었고, 전에는 계속 의정활동을 했던 정치인이었다.
『선배님 웬일이십니까?』
『난 자네에게 전화하면 안되나?』
『그런 것이 아니라, 뜻밖이어서입니다. 말씀하십시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그를 장관님이라고 부르거나 또는 의원님이라고 호칭하지만 사석에서는 선배라고 불렀다.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는 시침을 떼고 형님이라고 불렀는데, 그렇게 허물없이 대하는 것을 그는 좋아했다.
『내가 한 사람을 추천해 줄까 하는데 만나보겠나?』
『선배님이 추천하시는데 당연히 만나겠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여자일세.』
『네? 여자라고요?』
『왜? 여자라니까 싫나?』
『여자가 싫을 리가 있습니까? 무슨 일입니까?』
『벤처기업을 세우려고 하는 여자인데, 자네가 창업투자회사를 한다는 것을 알고 소개시켜 달라고 해서야.』
『어떤 분야입니까? 컴퓨터 쪽입니까?』
『자네야 컴퓨터만이 제일이겠지만, 이 사람은 유전공학이라고 할까, 의료 관계 일일세. 물론 컴퓨터와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미국 교포일세. 그런데 한국에서 사업을 일으켜 보겠다고 큰 프로젝트를 가지고 왔네. 나하고는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있는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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