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디지탈라인 정현준 사장의 불법대출 비리가 속속 드러나면서 벤처지주회사들이 이번 사건의 불똥이 튀지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관련업체 20여개를 무리하게 인수합병(M&A)하던 중 코스닥시장 몰락과 함께 한국디지탈라인의 주가가 급락하면서 불법대출 비리로 파국을 맞은 정현준 사건은 벤처지주회사를 표방한 업체들이 기술개발은 뒷전인채 부의 축적을 위한 「머니게임」에 골몰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특히 30일 코스닥시장의 대표적인 벤처지주회사인 리타워테크놀러지스가 자회사인 아시아넷 인수를 위해 1조5000억원의 급전을 돌린 것에 대해 주가를 띄우기 위해 외자유치로 둔갑시켰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일부 벤처지수회사들의 출자형태에 대한 적법성 논란마저 일으키고 있다.
벤처지주회사들은 파문이 확산되자 혹시 불똥이 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는 반응이다.
◇현황 = 증시에서 벤처지주회사 성격을 띠는 업체만도 줄잡아 10여개. 지난해 벤처붐과 맞물려 코스닥시장이 활황세를 보이면서 코스닥등록 업체들이 높아진 주가를 이용해 관련업체를 인수하는 방식의 출자가 봇물을 이뤘다. 올 초에는 비정보기술 업체를 인수해 IT업체로 전환시킨 후 비상장 관련업체를 M&A하는 새로운 형태의 펀딩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한국디지탈라인, 리타워테크놀러지스, 바른손, 메디슨, 미래와사람, 골드뱅크, 로커스홀딩스 등이 대표적인 벤처지주회사. 또 한글과컴퓨터, 다우기술, 다음커뮤니케이션, 한국정보통신 등도 출자회사를 늘리며 벤처지주회사의 성격을 보이고 있다.
이들 업체는 비상장 IT업체에 대한 출자로 신규사업진출과 시너지효과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면서 증시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한국디지탈라인은 정씨의 잇따른 M&A와 지분출자로 지난 2월중 한때 5만1500원(액면가 500원)까지 주가가 상승했지만 코스닥시장 폭락과 불법대출 사건이 불거지면서 주당 2000원대까지 추락했다. 리타워테크놀러지스도 인수개발(A&D)과 출자회사 나스닥 상장 등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때 주가가 주당 400만원(액면가 500원)에 육박하며 코스닥시장의 황제주로 부각됐지만 코스닥시장 폭락과 함께 외국인 보유매물이 쏟아지며 1만4000원대까지 하락한 상태다.
제2의 리타워테크놀러지스로 부각되며 올 상반기 가파른 주가 상승을 보였던 바른손을 비롯해 메디슨, 미래와사람, 로커스 등 벤처지주회사 성격이 강했던 업체들도 대표적인 벤처지주회사인 일본의 소프트뱅크의 주가폭락과 함께 주가가 크게 하락했다.
특히 최근 정씨의 불법대출사건은 벤처지주회사의 성장한계성을 부각시키며 이들 벤처지주회사의 주가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형태 = 벤처지주회사는 크게 출자만을 전문으로 하는 순수지주회사와 사업의 확대와 출자를 목적으로 투자하는 복합지주회사로 나뉜다. 리타워테크놀러지스, 바른손, 로커스홀딩스 등이 순수지주회사에 가깝고 나머지는 복합지주회사로 분류된다.
문제는 올해 코스닥시장에서 새롭게 부각된 순수지주회사. 이들 업체는 비등록업체에 출자하거나 M&A하는 과정에서 머니게임을 벌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예컨대 A가 B에게 주식을 1만원에 팔고 B는 C에게 2만원, C는 D에게 4만원에 파는 식으로 대주주나 특정인에게 막대한 평가익을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에 불법적인 수단이 동원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바른손은 지난 7월 대주주가 동일한 와와닷컴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증자를 통한 신주인수 형식이 아닌 대주주 보유 구주를 매입하면서 대주주인 미래랩에 54억원의 이익을 가져다줬다. 리타워테크놀러지스도 제3자 배정방식을 통해 여러업체를 인수하면서 인수 및 피인수업체 대주주들이 막대한 평가익을 챙겼다.
로커스홀딩스도 아직까지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지만 계획대로 로커스가 출자한 회사를 인수할 경우 로커스 및 로커스의 대주주에게 상당한 평가익을 가져다 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적법성. 관련 업체들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금융감독원이 일부 업체에 대해 『주가급등 과정에서 내부정보를 이용한 불공정거래가 있었는지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고 밝혀 유권해석 결과가 주목된다.
◇파급 = 코스닥시장 하락세를 지속할 경우 제2, 3의 정현준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높은 주가를 등에 업고 IT벤처업계에 집중적으로 이뤄진 비정상적인 투자가 최근 주가하락으로 감춰진 문제들이 하나둘씩 불거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벤처지주회사의 위축은 코스닥시장 폭락으로 자금줄마저 끊긴 벤처업계에 치명타를 날릴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증시의 벤처지주회사들이 투자한 100여곳의 관련업체들이 당장 자금압박에 시달릴 것이 불보듯한데다 자칫 머니게임에 놀아나는 업체로 비춰져 여타 신규자금 유입이 차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굿모닝증권 김동준 연구원은 『일부 사이비 벤처기업인의 불법적인 사기행각은 자칫 건실한 벤처기업마저 도산시킬 수 있다』며 『정현준 사건을 계기로 벤처업계의 옥석가리기가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익종기자 ij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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