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이 아름답다.」 20세기 미 통신시장을 주름잡았던 거대통신기업 AT&T가 회사를 4개 독립업체로 분할하는 「대수술」에 착수했다.
지난 84년 독점당국에 의해 지역전화서비스 부문을 8개사로 강제 분할당한 이래 최대 규모의 조직개편인 이번 분할은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스스로 선택한 「모험」이라는 점에서 미국은 물론 전세계 통신업계가 놀라고 있다. 분할안의 배경과 향후 통신업계에 미치는 파장에 대해 2회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
AT&T는 4개 핵심 사업을 각각 독립회사로 분리·경영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구조조정(안)을 확정, 26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AT&T는 앞으로 기업을 대상으로 네트워크사업을 벌이는 AT&T비즈니스(99년 매출 250억달러)를 비롯해 장거리전화사업의 AT&T소비자(210억달러), 이동통신사업을 책임지는 AT&T와이어리스(76억달러), 케이블TV 및 고속인터넷서비스의 AT&T브로드밴드(57억달러) 등 4개 회사로 분할·경영하게 된다. AT&T는 각 부문별로 트래킹 주식을 발행하는 등 독립절차를 밟아 2002년말까지 분할작업을 완료할 계획이다.
◇배경
AT&T의 이번 발표는 최근 통신업계의 주요 테마인 「융합(컨버전스)」을 정면으로 거스른다는 점에서 하나의 「도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부분의 통신업체들이 유선전화, 이동통신, 인터넷, 케이블사업 등 모든 통신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원스톱」 서비스에 초점을 맞추고 M&A에 열을 올리는 상황에서 AT&T는 이와 정반대로 기업분할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사실 AT&T도 그동안 다른 업체들과 마찬가지로 몸집을 불리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급감하는 장거리전화 수익을 메우기 위해 케이블사업에 눈을 돌렸고 1000억달러 이상을 쏟아 부으며 TCI, 미디어원 등을 인수해 미 최대 케이블사업자로 부상했다.
그러나 AT&T는 지난 수년간 막대한 투자를 통해 이룩하려 했던 종합통신서비스업체의 야망을 던져버리고 전문통신서비스업체 4개사로 분할하는 것으로 180도 방향을 틀었다.
이같은 선택을 강요받은 원인으로는 우선 자금상황의 악화를 꼽을 수 있다. 이 회사는 급변하는 통신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주력사업인 장거리전화 수익도 급속히 줄어들어 총체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가는 올들어 55% 이상 폭락했으며 이에 따라 시가총액도 1000억달러나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AT&T는 자금수혈이 절실했고, 마침내 4개 회사별로 트래킹 주식을 발행하여 숨통을 튼 후 전문화에 승부를 거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또 이러한 분할 운영이 관료화된 조직으로 인해 통신시장의 빠른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고질적인 문제점도 동시에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성공 가능성
이번 시도에 대해 시장전문가들은 일단 몸집을 줄였다는 것은 환영하지만 과연 AT&T가 20세기에 누렸던 영화를 되찾을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심스러워 하고 있다.
우선 4개 업체로 분할해 주식을 발행하면 AT&T 몰락의 주범인 장거리사업부는 시장에서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결국 「공생을 위한 구조조정」이 아닌 「나만 살겠다는 짐 덜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나머지 사업부가 도움을 주기 위해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것도 당장은 효과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전체의 경쟁력을 해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 점은 지난 97년 AT&T에서 분사한 통신장비업체 루슨트테크놀로지스가 현재 부진의 늪에 빠져 있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루슨트는 AT&T라는 거대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는 자만감에 빠져 신상품 개발과 새로운 고객 창출에 소홀해 AT&T 못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분할안을 문제삼을 수 있다는 점도 향후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FCC는 AT&T가 차지하고 있는 장거리전화시장의 비중 때문에 이번 분할과정을 주시할 계획이다. FCC는 또 분할안이 실행될 경우 지난 6월 승인한 미디어원 인수건도 다시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승인조건으로 달았던 전화회선망 개방이 회사가 독립 운영될 경우에는 사실상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를 반영하듯 AT&T가 대반격을 노리고 발표한 이번 분사안에도 불구하고 이날 회사의 주가는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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