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벤처기업들은 기본적으로 남의 기술이나 비즈니스모델을 베끼는 데 너무 익숙한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가령 해외의 첨단기술을 잘 베껴 좋은 제품을 만든다 해도 국내시장에서는 1등을 할지 몰라도 세계적으로는 1등이 되기 어려운 것이지요. 시작부터 1등을 포기하고도 글로벌 마케팅이 잘 될리가 있겠습니까.』
80년대 중반 거의 맨몸으로 미국에 건너가 오랜 고생끝에 지난 97년 샌프란시스코 인근 서니베일에 네트워크장비업체인 하프돔시스템을 창업, 제2의 「유리시스템 신화」에 도전하는 찰스 구 사장(45·한국명 구철회). 그는 한국의 벤처기업이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아직은 여러면에서 미국 벤처기업과 차이가 많다고 했다. 지난 15일 방한한 구 사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과 실리콘밸리 벤처기업을 비교해본다.
◇ 시드머니가 중요하다=구 사장이 하프돔시스템을 창업하기 위해서는 50만달러의 종자돈(시드머니)을 벌어야 했다. 이를 위해 구 사장은 텍사스인스트루먼츠(TI) 등 반도체업체에서 테스트나 개발용으로 쓰고 버리는 폐웨이퍼(그는 이것을 쓰레기라고 불렀다)를 수거해 태양전지로 재활용하는 방식으로 3년만에 50만달러를 손에 쥐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마케팅 노하우도 쌓았다. 구 사장은 『대부분의 한국 벤처기업들은 맨몸으로 창업전선에 뛰어들어 펀딩에 실패할 경우 쉽게 무너지는 속성이 있다』고 말했다.
◇ 코스닥이 능사는 아니다=하프돔시스템은 현재 세계 최대의 네트워크장비업체인 시스코도 만들지 못하는 신개념 무선인터넷 관련 장비를 개발중인데 상용화될 경우 나스닥에 진출, 이른바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러나 하프돔은 루슨트·노던텔레콤·시스코 등 대형업체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어 상장(IPO)과 인수합병(M &A)의 가능성을 반반으로 보고 있다. 출발부터 코스닥을 목표로 전력투구하는 한국 벤처기업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곳이 실리콘밸리라는 것이 구 사장의 얘기다.
◇ 펀딩은 쓰라고 주는 돈이다=『투자가들이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자금은 쓰라고 주는 돈이다. 그러나 많은 한국의 벤처기업들은 자본을 유치해 비즈니스 비용으로 모두 쓰는 것이 아니라 유보를 해놓고 다른 업체에 투자하는 등으로 전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구 사장은 실리콘밸리에서는 기업들이 투자유치자금을 쓰지 않고 다른 곳에 쓰면 난리가 난다고 했다. 실제로 하프돔도 내년초까지 총 2500여만달러를 유치해 내년까지 신제품 개발 및 양산, 외부 전문인력 스카우트, 내부 운영비 등에 전액 투입할 예정이다.
◇ 팀이 중요하다=한국이나 실리콘밸리 모두 펀딩을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경영자의 능력이다. 그러나 한국은 사람만 보고 투자를 결정하는 데 비해 실리콘밸리는 관리·개발·마케팅 등 팀이 완벽하게 구성돼야 펀딩이 이뤄진다는 것이 구 사장의 얘기다. 그는 『벤처는 조직력이 중요하다. 특정 분야만 뛰어나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부분이 고르게 팀을 형성, 팀워크를 극대화할 때 기업의 모양새를 갖출 수 있다』고 한국과 실리콘밸리를 비교해 말했다.
◇ 뿌리가 약하다=벤처의 본고장 실리콘밸리가 쉬지 않고 성장을 거듭하는 이유 중 하나는 기초가 탄탄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스탠퍼드와 버클리를 중심으로 기초과학과 핵심기술이 첨단기술의 뿌리를 지탱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국내 벤처기업들은 지나치게 응용 비즈니스에 치중, 진입장벽이 낮다는 것이 한국 벤처를 바라보는 구 사장의 시각이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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