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 논설실장 hdlee@etnews.co.kr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게 얼마나 될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한다. 내 모습도 어제와 오늘이 같지 않다. 그래서일까. 「고정불변은 없다」는 말이 있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은 게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고정불변은 없다」고 한 그것만은 불변이라는 말도 한다.
세상이치가 이러니 정부정책이라고 바뀌지 말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잘못된 정책은 촌각을 다퉈 곧추잡아야 한다. 그것이 정부의 책무고 역할이다.
그런데 최근 정부정책을 놓고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각종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데 국민들의 반응은 아주 시큰둥하다. 국민들의 복지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정책이고 21세기 지식강국을 향한 일인데 왜 냉소적인가. 『도대체 믿을 수가 없다』 『이랬다 저랬다하니 나중에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더 두고 봐야지』 『그 말 믿고 따랐다가 나중에 뒤집히면 나만 손해본다』하는 반응이 적지 않다.
전문관료들이 밤잠 설치며 머리를 짜내 세운 정책이 국민들의 불신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의 그간 정책이 오락가락한 것에 있다고 본다. 지나치게 갈지자 행보를 한 것이다. 신뢰가 생명인 정부정책이 오락가락 하면 국민들은 덩달아 갈피를 잡기 어렵다. 개인간에도 앞의 말과 뒤의 말이 다르면 상대방한테 믿음을 주지 못한다.
정부정책은 사전에 치밀한 분석과 최상과 최악 등 여러 가지의 경우를 가정해서 수립하고 집행해야 정책의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다. 정책을 입안하고 그 정책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려면 고려해야 할 점이 많은 게 사실이다. 시행시기와 추진방법, 주변상황, 일관성 유지 등이 맞아 떨어져야 국민적 지지를 얻어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우리의 정책행태는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다 보니 본전도 못 건지는 격이다. 차세대이동통신(IMT2000) 기술표준방식 선정과 예금부분보장제 실시, 의약분업사태, 공적자금 조성, 남북경제협력, 대북 식량지원 문제, 대우와 한보철강 매각문책 등의 사태에서 보듯 정책의 혼선은 심각할 정도다.
정보통신업계의 최대 관심사인 IMT2000 기술표준 선정 과정을 보자. 정부는 지난 10일 IMT2000 기술표준을 그동안 천명해 온 「업계 자율 원칙」 대신 「정부의 직접 개입」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지난 7월 기술표준은 『업계자율로 선택토록 하겠다』고 공언한 정부는 사업자들이 비동기식을 선호하자 지난 9월 사업자 대표에게 동기식 선택을 권고했다.
사업자들이 모두 비동기식을 고집하자 정부는 신청서 접수마감을 당초 9월 말에서 10월 말로 1개월 연기했다. 그리고 9월에 기술표준협의회를 발족시켜 주파수를 동기·비동기·임의대역 등 3개로 구분해 사업자를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만약 사업자 3사가 모두 비동기를 신청하면 1개 사업자는 탈락시킨다는 방침이다. 실익도 없이 정책의 혼선만 일으키고 헛바퀴만 돌다가 원점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금융개혁과 맞물려 있는 예금부분보장제도도 시행시기와 한도를 놓고 논쟁이 뜨겁다. 얼마 전까지 정부의 일관된 입장은 『내년 1월부터 시행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요즘 갑자기 정치권과 전직 경제부총리들이 연기론을 제기하자 정부의 태도가 모호해지고 있다. 연기론자들은 아직 금융·기업구조 조정이 끝나지 않았고 자금의 급격한 이동으로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말한다. 강행론자들은 시장에 의한 구조조정이라는 지향점을 향해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양측 주장은 모두 장단점을 안고 있지만 정책은 선택의 문제다. 정부의 분명한 입장표명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대우차와 한보철강 매각 실패에 대한 관련자에 대한 문책도 여론만 의식한 짜맞추기식 징계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관련 공무원들은 전혀 책임이 없단 말인가. 의약분업사태와 공적자금 조성, 남북경제협력 등에서도 정책혼선은 예외가 아니었다.
왜 그럴까. 가장 큰 이유는 지나치게 단기적인 정책의 성과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 허리에 매어 못 쓴다고 했다. 거쳐야 할 과정은 건너뛰면 탈이 생긴다. 시간에 쫓기다 보면 정책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지 못한다.
우리는 처리해야 할 일이 많다. IMT2000 사업자 선정이나 금융구조조정.공공부분 개혁 등 어느 것 하나 수월한 게 없다. 모두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일이다. 이럴수록 공개적인 논의와 의견수렴을 거쳐 최대공약수를 도출해 내야 한다. 특히 정책을 바꿀 때는 국민들에게 그간의 추진 경위와 지금의 상황 그리고 변경사유를 소상히 밝혀 국민들의 이해와 협조를 구해야 한다.
그러나 더 바람직한 것은 국민이 납득하고 안심할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해 일관성있게 추진해 나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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