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554돌 한글날이다. 정보시대가 만개한다는 새 천년 들어 처음 맞는 한글창제 기념일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글이라는 말은 「한(韓)나라의 글」 또는 「세상에서 첫째 가는 글」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또한 한글 창제에 대한 세종대왕의 높은 뜻은 물론이거니와 한글의 과학성 역시 익히 숙지해온 터다.
그러나 정보시대가 도래하면서 한글은 그 원리적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컴퓨터 언어라고 할 수 있는 영어와 비교되면서 오히려 열등함이 지적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글은 컴퓨터와 잘 어울릴 수 없는 언어라는 식의 패배주의가 IT분야에 퍼졌던 적이 있었다. 인터넷이 확산되면서는 누구나 쉽게 컴퓨터와 접근할 수 있는 한글의 체계적인 정보화가 더욱 절실한 문제로 지적됐다. 또 남북한 교류가 시작되면서 남북한의 서로 다른 정보화 방식과 문법체계가 오히려 교류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554돌 한글날을 맞아 이제는 한글을 산업적으로 응용할 수 있도록 공학적 차원에서 고찰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논리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다. 공학적 차원이 뜻하는 바는 두말할 나위없이 한글과 컴퓨터가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연구적 토대일 것이다. 공학적 차원의 접근은 특히 현 정부가 주창하고 있는 21세기 디지털 강국의 건설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닿아 있기도 하다.
물론 한글 기계화나 정보화에 대한 노력은 한글 타자기가 출현한 지난 50년대부터 꾸준히 이어져 왔다. 70년대부터는 영문 기반의 컴퓨터 모니터나 프린터에서 한글을 출력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고 80년대 들어서는 키보드 자판과 한글처리코드 등의 표준화가 시도됐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은 새로운 정보기술이 출현할 때마다 이를 부랴부랴 한글과 접목시키려는 시도였을 뿐 공학적 차원에서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근본적인 접근이나 투자는 아니었다. 더욱이 현재 산업에 적용되고 있는 한글처리 방식이 사실은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영문판 컴퓨터 운용체계를 한글화하기 위해 개발했던 기술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글민족으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보시대·인터넷시대 그리고 남북한 교류시대와 관련해서 더욱 우선적이고 실질적으로 접근해야 할 한글공학 분야로는 자연어 처리와 음성인식 등이 꼽히고 있다. 두 분야는 그동안 산·학·연 연계를 통해 그동안 꾸준한 연구발전 노력이 있기는 했지만 한글을 컴퓨터에 능동적으로 접목시키는 데는 여전히 미흡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향후 디지털강국 건설의 관건이 두 분야의 산업적 발전 성과에 달려있음은 물론이다.
두 분야 못지 않게 중요한 또 하나의 과제는 다른 언어들과의 유연한 호환성을 위해 한글의 문자체계를 다듬어가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특히 남한의 「한글」과 북한의 「조선글」로 나뉘어 버린, 큰 의미의 한글통일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이제 한글 공학을 연구·발전시켜야 하는 의무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글민족으로서 일반인·IT업계 그리고 정부당국 할 것 없이 누구나가 함께 경주해야 할 우리 모두의 역사적 소임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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