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전자상거래(EC)하면 민간업자들의 일로만 여기는 경우가 적지않다. 하지만 연간 거래금액 60조원, 나라 살림살이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정부 조달규모를 생각하면 정부는 EC의 가장 큰 「주체」일 수밖에 없다. 정부는 EC활성화 차원에서 최근 조달 관련 법령들을 개정중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EC의 강력한 주체라는 자기인식을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화려한 공약으로 내걸었던 「사이버 무역환경」 조성작업도 개정 대외무역법이 졸속 처리됨으로써 결국 용두사미로 끝날 공산이 크다. 글로벌EC 환경을 겨냥해 걸림돌을 제거하려던 노력이 부처간 이해다툼으로 흐지부지 마무리된 것이다.
◇조달 =최근 재정경제부는 조달사업법·국가계약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각각 개정, 정부 조달에 EC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현재 개정안이 확정된 국가계약법의 경우 모든 정부기관을 대상으로 전자입찰을 권고하는 한편, 조달사업법은 조달청 발주물량에 대해 전자조달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두가지 법률 개정안 모두 시늉에만 그쳤다는 평가다. 모든 정부기관의 조달을 규정하는 국가계약법이 단지 전자입찰만을 「권고」하는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법률의 하위조항에 삽입하는 정도에 그쳤다. 조달청 관계자는 『OECD에 가입한 뒤 정부조달의 투명성·효율성 제고를 위해 전자조달 의무화를 추진해왔지만 재경부의 반대가 커 서로 절충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면서 『미국정부의 경우 전자조달을 의무화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아쉬운 감이 있다』고 말했다. 비록 시한을 주더라도 의무화했어야 한다는 고백이다. 법률 개정안 실무작업에 참여했던 재경부 관계자는 『그동안의 관행과 정부기관의 정보화환경 등을 감안할 때 전자조달 의무화는 무리』라며 『관계부처와 협의를 통해 진통끝에 내려진 결론』이라고 말했다.
정부조달의 핵심 법제가 EC를 수용하는 데 소극적이어서 타 법률과의 충돌도 발생하고 있다. 최근 분야별로 EC에 대한 욕구가 분출하면서 주무부처의 의지가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분야가 건설. 건설교통부는 지난해 건설기술관리법을 개정하면서 공공기관의 「전자거래(CALS)」 수용을 법률에 먼저 명시했다. 건교부 관계자는 『EC활성화를 위해 부처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지만 법제처 심의결과 전자거래기본법·정보통신망이용촉진 등에 관한 법률 등과 중첩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전자정부법 =지난 수년간 입법여부를 둘러싸고 온갖 진통을 겪었던 「전자정부법(안)」이 최근 행정자치부 발의로 입법예고됐다. 골자는 정부업무의 전산화지만 결국 기업·정부간(B2G) EC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가장 문제가 되는 조항은 20조의 전자서명 관련 규정. 민간기업과의 거래인 정부조달 전자문서교환(EDI)시스템에 적용되는 전자서명 인증서비스를 정보통신부의 전자서명법과 별도체계로 가져가는 것이다. 심지어는 행자부의 관할권을 명시하기 위해 전자서명이라는 법적 용어도 「전자관인」으로 바꿔버리는 해프닝을 벌이고 있다.
행자부 정부전산관리소 손형길 서기관은 『인증서비스를 특정 부처나 기관에서 총괄할 이유는 없다』면서 『전자정부법이 행정부처의 공문서처리 등에 관한 법인 만큼 하등의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통부 관계자는 『전자정부법은 현재 시행중인 전자서명법과 충돌의 여지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향후 공인인증기관(CA)과의 연동문제 등 풀어야 할 숙제가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조달청의 조달EDI 인증시스템을 대행 운영해왔던 한국전산원은 시스템 확장작업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대외무역법 =최근 마련된 개정안은 「사이버 무역환경 조성」이라는 거창한 구호가 부끄러울 정도다. 디지털 콘텐츠상품의 무역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조항이 추가됐을 뿐 당초 법제화하기로 했던 전자무역중개기관의 인증서비스는 아예 빠져버렸다. 물론 주무부처인 산업자원부가 정통부의 전자서명법 관리하에 들어가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 한국무역정보통신 관계자는 『실제 돈이 오가는 인터넷 무역거래에 완벽한 보안체계를 갖추기 위해서는 인증서비스가 필수적』이라며 『인증이 빠진 전자무역중개기관은 지역 경제지원단체나 전자상거래지원센터(ECRC) 등과 다를바 없다』고 실효성을 의심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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