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도 벤처의 꿈을 이룬 사람은 많다. 스톡옵션으로 일확천금을 벌었거나 톡톡 튀는 아이디어 하나로 한 순간에 부자가 돼버린 벤처 사업가를 찾기란 이제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이번 「2000년 벤처기업대상」에서 최고상인 동탑산업훈장을 받은 비트컴퓨터의 조현정 사장(43)도 분명 벤처의 꿈을 이룬 사람이다. 하지만 조 사장을 한순간에 일확천금을 거둬들인 벤처 사업가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만큼 조현정 사장과 그가 운영하는 비트컴퓨터는 벤처의 정도(正道)를 걸어왔다. 조 사장 스스로도 비트컴퓨터를 「야생화」 같은 벤처기업이라고 말한다.
모진 풍파를 겪고 자라난 이름 없는 야생화처럼 비트컴퓨터는 그렇게 성장했다. 소프트웨어는 서비스 산업이라는 이유로 은행 대출조차 안되던 시절에 사업을 시작했고 그 흔한 벤처자금도 회사 설립후 10년이 훨씬 지나서야 받았다.
비트컴퓨터가 설립된 83년은 IBM이 개인용 컴퓨터(PC)를 출시한 지 불과 2년 뒤다. 그 당시만 해도 PC용 소프트웨어가 사업 아이템이 될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대학 3학년생이던 조현정 사장 빼고는 아무도 없었다. 「국내 PC용 소프트웨어 개발 1호」와 「국내 대학생 벤처창업 1호」라는 기록은 이렇게 탄생했다.
국내 1호로 가장 먼저 출발했지만 결코 쉽게 성공한 것은 아니다. 열악한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 환경에서 너무 일찍 출발한 것도 회사의 쾌속 성장에는 오히려 걸림돌이 됐다. 『4, 5년만 늦게 출발했더라면 지금보다 고생도 훨씬 덜 하고 더욱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조 사장의 솔직한 생각이다.
그래서 18년이라는 비트컴퓨터의 역사에 비하면 현재 200억원대 매출이 조금은 초라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국내 의료 전문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비트컴퓨터가 차지하고 있는 입지는 가히 독보적이다. 그동안 수많은 소프트웨어 벤처기업들이 등장했지만 비트컴퓨터처럼 자신의 전문영역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진 업체는 찾아 보기 힘들다.
이처럼 비트컴퓨터는 출발부터가 벤처였고 지금도 벤처 정신 그대로다.
조 사장은 『얼마전 벤처 붐이 한창일 때 몰려드는 자금으로 다른 사람들은 자동차를 바꿨지만 우리는 자동차의 바퀴를 갈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요즘 떠도는 「벤처 위기론」도 자동차를 바꾼 벤처기업들에게 해당되는 얘기다. 단지 자동차 바퀴만 간 비트컴퓨터는 지금 오히려 회사 창립이래 최고의 호황기를 맞고 있다.
최근 조 사장이 수상한 벤처기업대상은 중소기업청이 우수 벤처 기업인의 발굴 및 포상을 통해 벤처 기업인의 도전정신과 창의력을 높이기 위해 마련한 제도다. 특히 그가 받은 동탑산업훈장은 총 76개 업체 14명에게 주어진 상들 가운데 최고 영예의 포상이다.
벤처가 어려운 지금 같은 시기에 벤처기업인으로서 그가 받은 동탑산업훈장이 오히려 더욱 빛을 발하는 것도 어쩌면 조 사장이 지닌 변함없는 벤처정신 때문일 듯싶다.
비트컴퓨터만큼이나 조 사장의 개인적인 인생 여정도 야생화를 닮았다. 그가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중학교를 중퇴하고 충무로에서 가전제품을 수리하는 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얘기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검정고시를 거쳐 인하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입학했고 대학 3학년 시절에 비트컴퓨터를 설립했다.
이러한 힘겨운 인생 역경 때문만은 아니지만 조 사장은 교육을 통한 후진 양성에 남다른 신념과 열정을 지녔다. 이같은 교육 의지는 지난 90년 비트교육센터의 설립에 그대로 투영된다.
실제로 비트교육센터는 「상위 1%의 전문가 양성」을 목표로 이미 4000여명에 달
하는 전문 엔지니어를 배출했고 이들 비트 출신들은 소프트웨어 개발회사, 시스템통합(SI) 업체, 금융 및 제조업체 전산실 등 국내 정보기술(IT)업계 각 분야에 진출해 있다.
『비트교육센터 설립을 추진하던 89년 당시만 해도 국내에는 「코볼(COBOL)」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가 주류를 이뤘지만 우리는 과감히 「C」언어를 중심으로 교육을 시작했으며 이는 결국,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조 사장은 자부한다.
하지만 조 사장은 『우수한 강사진을 통해 전산 엔지니어를 많이 배출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가 추구하는 진정한 교육 목표는 강사보다는 동기들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진정한 교육 커뮤니티의 구축이다.
그래서 비트교육센터는 그동안 졸업생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와 연계로 IT업계의 파워 네트워크를 형성해 왔다. 지난 8월에 열린 교육센터 설립 10주년 기념행사에 무려 1400명에 가까운 전산 엔지니어들이 한자리에 모였던 것도 「비트 커뮤니티」의 보이지 않는 힘 덕분이다.
특히 서울대 철학과 김영정 교수는 비트교육센터 30기로 수료한 후 오란디프라는 회사를 설립했으며 11기 졸업생이 창업한 언어과학은 현재 스톡캐스트, 링구아텍 등 4개의 자회사를 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기술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조 사장의 교육 철학은 경쟁 업체들에게도 해당된다. 언젠가 경쟁 회사의 엔지니어들이 비트교육센터에 입학했을 때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모든 기술을 공개했다. 그들이 회사로 돌아가 개발한 소프트웨어는 지금도 비트컴퓨터 제품과 의료 정보화 시장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비트컴퓨터 전체 임직원과 가족 220여명은 이번 주말 제주도로 여행을 간다. 상반기 매출 목표를 초과 달성할 경우 모든 직원들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가겠다고 조 사장이 약속했기 때문이다.
의료정보화 부문 수요 확대로 비트컴퓨터는 지난 상반기에 이미 지난해의 전체 매출(163억원)보다 많은 166억원의 영업 실적을 기록했으며 올해 전체로는 266억원 매출 달성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회사 직원과 사장 모두가 약속을 지킨 셈이다.
그래서인지 인터뷰를 마치고 곧바로 회사 IR 행사장으로 달려 가는 조 사장의 표정이 싱글벙글이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 회사가 매출을 많이 올린 것도 기쁘지만 그보다는 우리를 지켜보는 사람들과 투자가들에게 내가 약속한 내용을 지켰다는 사실이 더욱 기분 좋다』고 조 사장은 말했다.
조현정 사장과 비트컴퓨터가 그동안의 어려운 역경을 극복하고 야생화로 피어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이 사회와의 약속을 지켰기 때문일 것이다.
【주상돈기자 sdjoo@etnews.co.kr】
◆약력◆
△1957년 8월 경남 김해 출신 △1977년 2월 서울 용문고등학교 졸업 △1983년 8월 비트컴퓨터 설립 △1985년 2월 인하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1985년 4월 (주)비트컴퓨터 대표이사 취임, 법인전환 △1989년 4월 표창장 - 체육부 장관, 서울올림픽 기여 △1989년 10월 비트기술연구소 소장 취임 △1994년 12월 비아이티출판사 설립 △1997년 연세대 보건대학원 보건환경 고위정책과정 수료 △1997년 11월 벤처기업대상 - 통상산업부 장관 △1997년 12월 표창장 - 정보통신부 장관, SW기술부문 유공자 표창 △1998년 6월 정보문화상 - 국무총리 △1998년 9월 데이터베이스(DB)대상 - 정보통신부 장관 △1998년 12월 98 DB대상 - 국무총리 △1999년 12월 보건복지부 표창장 수상 - 보건복지부 장관 △1999년 12월 비트교육센터 실업대책추진 공로표창 수상 - 국무총리 △2000년 3월 모범납세 표창 △2000년 5월 코스닥 최우수IR기업 선정 △2000년 9월 벤처기업대상 동탑산업훈장 수상 △현 벤처기업협회 부회장,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부회장, 대한의료정보학회 부회장, 인하대학교 겸임 부교수
많이 본 뉴스
-
1
삼성전자 반도체, 연말 성과급 '연봉 12~16%' 책정
-
2
한덕수 대행도 탄핵… 與 '권한쟁의심판·가처분' 野 “정부·여당 무책임”
-
3
“12분만에 완충” DGIST, 1000번 이상 활용 가능한 차세대 리튬-황전지 개발
-
4
정보보호기업 10곳 중 3곳, 인재 확보 어렵다…인력 부족 토로
-
5
日 '암호화폐 보유 불가능' 공식화…韓 '정책 검토' 목소리
-
6
'서울대·재무통=행장' 공식 깨졌다···차기 리더 '디지털 전문성' 급부상
-
7
프랑스 기관사, 달리는 기차서 투신… 탑승객 400명 '크리스마스의 악몽'
-
8
“코로나19, 자연발생 아냐...실험실서 유출”
-
9
美 우주비행사 2명 “이러다 우주 미아될라” [숏폼]
-
10
단통법, 10년만에 폐지…내년 6월부터 시행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