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

성기수 세계사이버기원 대표

어떤 문제든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있어야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최근 의료분쟁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여기서 분쟁 당사자 집단의 어느 일방 혹은 모두를 집단이기주의라고 몰아붙이거나 짜깁기식 임시방편 내지 권위주의적 사태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의사 대 약사 혹은 정부 대 의사 식의 집단 힘겨루기로 보는 것은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우선 한국 의료체계의 현상황을 정확히 진단해 잘못된 부분을 찾아낸 다음 그 근본적인 원인을 해소하는 것이 의료분쟁 해결의 정도(正道)라고 생각한다.

병원의 의료수가를 정부가 정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말, 정부 주도로 의료보험제도를 확충하면서부터다. 병원의 시설 차이나 의사들의 경력과 질적 수준에 관계없이 20여년간 전국민의 의료보험제도를 획일적으로 운영하다보니 무리와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병원들의 경영악화, 대형 종합병원으로의 환자 집중현상 등 심각한 증세들이 나타났다. 당초 정부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결과적으로 의료서비스는 하향평준화의 길을 걸어온 것이 사실이다. 많은 병원들이 입원실을 줄이고 외래환자만 받으며 명맥만 유지하거나 아예 문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관료적 의료보험제도의 피해를 짐작할 수 있다. 의사의 인건비 회수수단의 하나인 처방전 작성비의 경우 선진국의 10% 수준이라고 하니 실상을 알 만하다.

미국의 물가를 볼 때, 쌀·과일·채소 값을 보나 자동차·옷·가구·TV·휘발유 등 그 어느 것을 봐도 한국보다 비싼 것은 찾아보기 어렵고, 대체로 한국의 절반 수준인 것 같다. 필자가 직접 경험한 두 나라의 의료수가 차이는 10 대 1보다 격차가 더 벌어진다.

올해 초 여행중 지불한 감기몸살약 처방전 작성비는 80달러, 즉 9만원이고 약값은 약국을 찾아 헤맨 끝에 지불한 것 역시 80달러였다고 기억한다. 그때 목격한 기현상의 하나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병든 노인들이 처방전을 들고 슈퍼마켓 한 구석에 있는 약국으로 찾아와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리고, 접수 후 다시 30분을 더 기다려서야 약을 받아가는 딱한 모습들이었다. 왜 이런 불편한 제도가 생겼는지 모르지만 환자 입장에서 본 최상의 서비스는 병원에서의 원스톱 서비스다. 우리가 당연히 본받아야 할 좋은 제도가 미국에 많지만 나쁜 것까지 흉내낸다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그런데 현재의 어려움에서 빨리 벗어나려고 정부의 과오 인정이나 제도의 근원적인 수술은 외면하고 의료수가를 어느 정도 올릴 것인가를 갖고 협상을 하고 사태해결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국민의 부담 가중으로 연결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의료서비스 정상화의 길이 아니다. 단 한 개의 의료보험회사로 전국민의 다양한 의료서비스 요구를 충족시키겠다는 관료적 발상이야말로 오늘날의 의료대란을 불러온 가장 큰 원인라고 할 수 있다.

이를 개선하지 않고 지엽적인 것으로 해결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더 큰 문제로 연결될 뿐이다.

지금의 의료보험제도를 혹평한다면 전체주의적 발상의 소산이다. 한국이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자유선진국가라면 병원수가의 결정권은 마땅히 의료서비스의 주체인 각 병원에 돌려주고, 의료보험회사도 독점이 아닌 여러 보험회사의 자유경쟁체제로 바꾸어야 한다. 시장원리에 입각한 의료서비스와 보험서비스를 유도해 국민의 다양한 의료수요를 충족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무료봉사에 가까운 수준의 초저가 병원의 박리다매 경영전략과 세계 최고의 의료시설 및 첨단의료기술 수준을 자랑하는 종합병원이 다같이 공존하며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의료제도와 보험제도에 대한 발상의 전환만이 의료대란 해결의 실마리라고 본다.

제도의 근본적 개혁 없이는 의료대란의 근원적 치유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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